中 '미신과의 전쟁' 선포…"체제까지 위협"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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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파가 들끓는 베이징 (北京) 의 푸싱먼 (復興門) 전철역 입구. 오후 5시쯤 퇴근물결 사이로 50대의 한 중년 남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한 중년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일자리를 잃었군. " 안타깝다는 남자의 말에 여인이 깜짝 놀라 발길을 멈춘다. "빨리 액운을 피해야지. 자, 저리로 갑시다. 내가 방법을 일러 드리리다. " 두 사람은 이내 구석진 곳으로 사라졌다.

비슷한 풍경은 베이징 곳곳 육교 아래서도 벌어진다. 무작정 지방에서 올라온 외지인들이 그늘을 찾아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얄팍한 주머니를 노리는 이들은 이른바 '쏸밍자 (算命家.점술가)' 들이다. 관상과 사주를 보기도 하고 글씨체를 갖고 미래를 점쳐 주기도 한다. 용하다고 소문나면 복채는 1백위안 (약 14만원) 까지 뛴다. 보통은 5~20위안.

중국 건국과 함께 자취를 감췄던 미신이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미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78년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부터.

"빠른 경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신에 의존하려 한다" 는 게 중국과학보급연구소 궈정이 (郭正誼) 연구원의 설명이다.

18세기 중국 역사를 전공한 하버드대 필린 쿤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는 시점에 각종 종교 집단이 융성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종교들이 중국의 왕조를 바꾸기도 했다" 고 강조했다. 결국 최근 파룬궁 단속에서 중국 정부가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미신 타파' 지만 밑바탕에는 체제위기에 대한 당국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쿤 교수는 정치적인 색채가 별로 없었던 종교 집단도 지도자 검거 등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면 폭력적인 집단으로 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우선 당과 군부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색출하는 집안 단속을 실시했다. 이어 지난 6월말부터 인민일보 (人民日報) 등을 통해 미신의 허상을 폭로하는 글을 연재했다.

"21세기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과학교육을 통한 국가 중흥이 시급한 시점에 전근대적 미신에 발목이 잡혀 있다" 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2일 파룬궁 금지를 공식 발표하면서 전면전을 선포했다. 체제 위기를 의식하는 중국 정부의 절박함 앞에 국제사회의 인권시비는 걸림돌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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