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정상회담 '절반의 성공'…경제문제만 뜻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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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과 일본의 9일 정상회담이 지금까지 양국간에 깊어진 골을 모두 메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서로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기에는 지금까지 벌어진 골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지 않고, 눈을 미래로 돌려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21세기 전략적 파트너십을 논했다는 것만은 의미있는 일이다.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초점은 세가지였다.

우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문제에 대해 일본은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주문했다.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총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를 억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이라는 원론적 입장 표명에 그쳤다.

주룽지 (朱鎔基) 총리는 한발 나아가 양비론 (兩非論) 을 펼쳤다.

그는 "북한이 미.일.유럽연합 (EU) 과의 관계정상화를 환영한다" 며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를 촉구하는 한편 "어떤 국가도 한반도의 안정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 고 말해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구실로 무력사용론이 제기되는 미국 정가의 일부 강경세력을 겨냥했다.

둘째는 과거사 정리와 경제협력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건너뛰어 미래지향적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해 중.일 정상회담과는 달리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성의를 보였다.

장쩌민 (江澤民) 주석이 "과거를 거울로 삼자" 고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오부치 총리의 방중 (訪中)에 맞춰 중국 관영신문들은 9일 섬뜩한 난징 (南京) 대학살 당시 사진을 일제히 게재했다.

이는 지난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클린턴의 성추문 관련 책자를 판매금지시켰던 때와는 판이하다.

21세기를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일본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WTO)가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로 다짐했으며 중국 내륙 녹화사업을 돕기 위한 자금지원도 약속했다.

반면 일본은 또 저리의 자금지원을 내세워 베이징 (北京)~상하이 (上海) 간 고속철도에 일본의 신칸센 (新幹線) 을 도입해줄 것을 중국측에 요청했다.

마지막으로는 동북아시아 주도권 확보를 위한 양국의 신경전이다.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포함한 세력확장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추진중인 전역미사일방위 (TMD) 체제와 미.일 안보협력지침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중국은 일본의 무력이 아시아 주둔 미군의 공백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오부치 총리는 "가이드라인의 적용범위는 구체적 지역을 명시하지 않았다" 며 "TMD도 순수한 방어체제" 라고 진화를 시도했다.

중.일 외교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의 목표는 현안 정리가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타진" 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해 11월에 이어 8개월만에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잦은 상호방문을 통해 불신을 풀고 공감대를 조금씩 넓혀나간다는 것이다.

베이징.도쿄 = 유상철.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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