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순위보다 의미를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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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
자료: 세계경제포럼(WEF)

이코노미스트 9월 둘째 주, 대한민국은 ‘19’라는 숫자에 매달려 울고 웃었다. 서로 다른 기관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놓고 어제는 등수가 떨어졌다고 울상을 짓더니만, 오늘은 등수가 높아졌다며 자화자찬했다.

숫자 ‘19’에 울고 웃는 대한민국

9월 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9위로 지난해보다 6계단 밀려났다. WEF 순위는 지난해 2계단, 올해 6계단 등 MB정부 들어 8계단 떨어졌다.

과천 경제부처 관료들은 발표 전날까지 몇 계단이냐가 문제지, 당연히 높아질 거라며 득의양양했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에서 27위로 지난해보다 4계단 상승한 추억에 취해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자 6계단이나 미끄러진 것으로 나타나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2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두고 2012년까지 세계 15위(IMD 기준)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기염을 토해왔다. WEF 기준으로 보면 10위 정도인데, 이번 발표로 목표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더구나 위원회의 책임자는 대통령이 신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 강만수 위원장이고, 그동안 청와대에서 가진 회의만도 16차례에 이른다.

기획재정부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애써 그 의미를 축소했다. IMD와 WEF의 조사방식을 비교하면서 WEF 지수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WEF 평가 항목 중 3분의 2가 설문조사로 조사 당시 응답자의 주관적 판단이 많이 개입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쌍용차 파업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 겹쳐 설문에 응한 CEO들이 객관적인 조건보다 더 부정적으로 응답했을 거라며 평가절하했다.

그러고선 이튿날 세계은행(WB)의 기업환경평가 순위가 나오자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세계은행 평가에선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19위로 4계단 올라섰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 기업환경 개선대책을 발표하는 등 지속적으로 추진한 기업환경 개선 노력의 결과”라고 자찬했다.

심지어 처음으로 20위 안에 진입한 것을 강조하려는 듯 ‘첫 10위권 진입’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과거 정치권에서 집권을 연장할 목적에 ‘사사오입’이란 억지 논리로 정족수 미달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사례는 있었지만,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수석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이런 식으로 PR하는 것은 ‘순위 집착증’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순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 기관의 순위 평가에는 더욱 민감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이야 나라의 건전성을 재는 잣대니까 그렇다 해도 세계은행이나 IMD, WEF 등이 매기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평가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설문조사 대상도 다르고 평가 방식이 주관적이라서 뜰쭉날쭉하는데도 정부 대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 계단이라도 순위가 오르면 정부가 잘해서 그렇고, 거꾸로 떨어지면 평가 기준이 주관적이라서 그렇다는 식이다. 세계가 바라보는 우리의 경쟁력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정부부터 나서 순위를 유별나게 따지는 것은 볼썽사납다. 외신 보도를 봐도 우리나라만큼 법석을 떠는 나라는 없다.

IMD 국가경쟁력 지표의 경우 2007년 7위에 올랐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순위에서 빠진 상태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평가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찾아 국가경쟁력을 차근차근 높여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대표되는 MB정부의 정책을 왜 기업들이 현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양재찬 이코노미스트 편집위원·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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