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 폴리시 인터넷판, “의회 난동 분야 세계 리더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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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은 15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 의회’로 한국·대만·우크라이나 등 5개국을 꼽았다. 이 사이트는 7월 미디어법 통과 직후 울부짖는 민노당 이정희 의원을 여당 의원들이 끌어내는 한국 국회의 사진(사진 맨 위)도 함께 게재했다. 아래는 차례로 우크라이나·대만 의회에서 벌어진 난투극 모습이다. [사진=포린 폴리시 웹사이트]

한국 국회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unruly) 의회’로 꼽혔다. 이 잡지는 1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 “거짓말”이라고 외친 조 윌슨 의원에 대한 비난 결의안 통과 소식을 전하며 한국·대만·우크라이나·영국·호주 의회가 세상에서 가장 제멋대로라고 설명했다. 한국 등에서 벌어진 일에 비하면 “윌슨의 행동은 눈살 찌푸릴 일도 아니다”는 것이다. 순위는 매겨지지 않았으나 한국은 다섯 나라 중 가장 먼저 꼽혔다.

포린 폴리시는 “의회 난동 분야의 역대 챔피언은 대만이지만 현재 세계 리더는 한국”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다음은 이 잡지가 전한 다섯 나라 의회의 모습.

◆한국 국회는 격투기장=한국 민주주의는 온몸을 사용하는 스포츠다. 외교 정책, 언론 민주화 등을 놓고 벌어진 국회 토론은 종종 주먹질로 끝났다. 처음으로 세계의 주목을 끈 한국 국회의 패싸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처리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탄핵안 통과를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다. 경비들이 밀어내려 하자 의원들은 주먹을 날리고 가구를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이 ‘전투’는 지난해 12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놓고 벌어진 ‘전쟁’의 서곡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이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법안을 상정하자 야당 의원들은 해머와 전기톱을 이용해 문을 부쉈다. 회의실 안에 있던 의원들은 가구로 바리케이드를 쳤고 야당 의원들에게 소화기를 뿌려대며 싸움을 벌였다. 한 의원의 얼굴에선 피가 철철 흐르기도 했다. 이 모든 광경은 TV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화해는 야당 의원들이 의회를 12일 동안이나 점거한 뒤에야 이뤄졌다. 하지만 이 (유혈)충돌도 한국 의원들의 ‘피에 대한 욕망(blood lust)’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7월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토론은 완전히 주먹다짐(all-out fistfight)이었다.

◆한국 뺨치는 대만·우크라이나=대만 의회에선 1980년대부터 폭력이 일상사였다. 싸움은 언론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됐다. 가장 격렬했던 싸움에선 50명 이상의 의원이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신발·물·음식·마이크를 집어 던졌다. 한 여성의원 얼굴에 주먹을 날린 의원이 6개월간 자격정지를 받은 일도 있었다. 2005년엔 한 국민당 의원이 민진당 의원 세 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얼굴을 100바늘 이상 꿰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의회인 라다가 엉망이 된 것은 2004년 오렌지혁명부터다. 집권 오렌지연대 의원들은 친러시아 계열의 야당 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2006년 친러시아 계열이 총선에서 이기자 오렌지연대 측은 반대파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총리로 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고 계란을 집어 던졌다. 주먹이 오갔고 한 의원은 회의장 반대편으로 집어 던져지기도 했다.

◆총리 조롱하는 영국·호주=영국 의회에서 주먹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 때 면전에서 총리를 조롱하는 일이 흔하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스탈린(구 소련 독재자)과 미스터 빈(영국 코미디 프로그램 주인공)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빈정거리거나 야유도 다반사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섹스에 굶주린 보아 구렁이”라고 비유하고도 무사한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 의회에서도 상대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건 금기사항이다.

호주 의회는 더 공격적이다. 폴 키팅 전 총리는 의회 토론시간에 반대진영 의원들을 “쓰레기 같은 놈들” “오합지졸” “입이 험한 들창코들” “지적인 부랑자들” “뇌 이상자”등이라고 불렀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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