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정글의 일인자는 누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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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제10보 (166~184)]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이창호9단은 "겁이 많다"고 고백한다. 세계 최고수로 전장을 무인지경처럼 달려온 이창호지만 그는 언제나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겁내며 판세가 자신의 판단 범위를 벗어나 어디론가 폭주하는 것을 겁낸다. 상대의 묘수를 겁내고 자신의 부족함을 겁낸다. 이창호의 이 같은 모습에서 진정한 고수의 단면을 본다.

야생마와도 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서봉수9단도 "나는 겁이 많다"고 말한다.

그 서봉수9단이 가장 겁을 낸 존재가 바로 이창호9단이란 점은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깊은 동굴 같은 이창호의 속엔 무한한 능력이 잠재돼 있으며 이창호가 보여주는 것은 그의 일부라는 생각에 서봉수는 더욱 이창호를 겁낸다.

젊은 사자 이세돌9단은 이창호를 겁내지 않는다. 일인자를 겁내지 않는 이세돌은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의 싸움에선 정글의 냄새가 짙게 묻어나온다.

그런 이세돌에게 자극받아 이창호가 내면의 뜨거움을 폭발시킨 것이 바로 이 판이다. 도전기 1국에서 이창호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다가 이세돌의 역전 강타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이 판의 이창호는 그런 첫판의 흐름에 분노한 듯 젊은 사자를 정면에서 맹공해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지금, 이창호는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내주고 승리를 굳혀간다. 상변을 내주면 위험하다고 말하던 검토실의 프로들은 비로소 이창호가 계산을 끝냈음을 알아채고 실소하고 있다. 184에 이르러 이세돌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돌을 거두었다. A로 잡아도 반면으로 엇비슷한 형세. 덤을 내기까지는 아득한 거리다.

승부는 1대1이 됐다. 재미있는 승부다. 이창호 역시 이번 승부에 왕좌의 자리가 걸려있다고 믿고 있기에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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