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성의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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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성의 구조' (이수정 옮김, 민음사 출간)

모든 철학자가 다 기존 사유의 전복자요 새로운 사유의 창조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 철학자는 그 시대에 진리로 통용되고 있는 이론과 학설의 충실한 해설가로 만족한다.

이 책의 저자 이마무라 히토시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현대사상의 조류와 추세에 대한 광범위한 섭렵과 맵씨있는 요약 능력이다.

'근대성의 구조' 에서도 우리는 데카르트.베이컨.파스칼.홉스에서 하이데거.벤야민.푸코에 이르는 숱한 서구 사상가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직접 거명은 되지 않았지만 르네 지라르나 레비나스, 마샬 버만같은 학자의 목소리도 텍스트 여기저기서 울려퍼지고 있다.

저자는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근대성이라는 지난한 문제에 접근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건너오기 직전 교회와 상인 사이에 '시간' 을 점유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었다.

교회의 종을 대신해 시계가 일상생활의 지배자가 되었을 때 근대는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미래를 선취하여 현재에 편입시키고, 계획을 세워 또다시 미래를 향해 모험적으로 도박을 해가는 시간의식' 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식의 화신이 바로 근대 자본주의의 전형적 인간형인 기업가이다. 아울러 중세의 유기론적 세계상을 대신해 기계론적 세계상이 자리잡게 된다. 기계론적 정신은 세계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적 정신을 낳았으며 이 방법을 뒷받침하는 원점에 분할 불가능한 개인이 놓이게 되었다. 즉 기계론의 정신은 철학의 원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의 원리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동없는 기계론의 확대는 정치.경제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의 면에서도 근대의 성과를 짓밟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17~18세기의 제1근대는 프랑스 혁명으로 막을 내렸고 이어서 19~20세기의 제2근대가 지속됐지만 그것 역시 많은 문제점을 내장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제3근대로 보든 근대의 초극으로 보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대세계가 지닌 배제와 차별의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정치사회적 식인주의를 극복하고 기계론적 철학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근대의 궤적을 더듬어내려올 때는 여유와 자신감에 차있던 저자의 목소리가 결론 부분에 이르면 왠지 조급해져서 정해진 답변을 향해 치닫는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아마도 그것은 단순히 저자의 사유의 한계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대를 넘어서는 작업이 그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방증해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의 미비함은 불만으로 남는다.

*** 남진우

60년 전주생. 중앙대 문창과를 나와 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했다. 문학평론가로 시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으며 현재 문학동네 편집위원.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 평론집 '신성한 숲'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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