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건축사, 무에서 유를 만든다 … 그는 공간의 창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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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곡동 기안건축사사무소 김종천 대표. 김 대표는 “건축사는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공정 전반을 조율하는 지휘자다”라고 말한다. [사진=강정현 기자]

건축사는 집과 건물의 기본이 되는 설계도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논리력과 창의력은 필수다. 건축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서울 도곡동의 한 건축회사 사무실. 하얀 벽면 위에는 세계 각지의 건물 사진들이 붙어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띈다. 사무실 가운데 있는 회의용 테이블 위에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건물 모형이 놓여 있다. 모형 주변에는 직원들이 둘러서서 의견을 나누는 중이다. 모형은 실제 건물을 짓기에 앞서 완성된 설계도에 따라 축소 제작됐다. 건물을 짓기 전에 건축주의 이해를 돕고, 실제 공사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 등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회사 대표인 김종천(45) 건축사는 “회의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중심으로 설계를 보완한다”며 “보완 내용을 건축주에게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이를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용 도면과 제도용품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건축회사 사무실은 타 업종과 큰 차이가 없이 깔끔했다. 일일이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던 것은 과거의 얘기다. 이제는 컴퓨터 프로그램(CAD)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작업의 전산화가 이뤄지면서 전보다는 밤샘 근무도 줄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장하고 다양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직업, 바로 건축사다.

▶건축 현장의 지휘자=건축사는 건설교통부 장관의 면허를 받아 건축물의 설계나 공사감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건축사는 조형미·경제성·안정성을 고려해 주택·사무용 빌딩 등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건축계획 및 설계를 한다. 또 설계 내용이 시공 과정에 정확히 반영되는지를 확인하는 감리업무도 건축사의 몫이다. 보통 한 건물을 설계하는 데에는 건축사를 비롯한 10여 명이 한 팀으로 3~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건물에 따라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건축사의 업무는 설계 수주에서부터 시작된다. 건물주나 시공사가 해당 건물의 설계를 부탁해오면 우선 건물이 들어설 부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부지에 따라 건물의 형태와 층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건물 신축을 위한 인허가 업무도 건축사가 담당한다. 이를 위해 건물 한 건 당 30여 개가 넘는 관련 법규를 검토해야 한다.

설계 업무는 크게 초기 계획설계와 본설계로 나뉜다. 계획설계를 통해 건물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구성한다. 본설계는 실제 공사를 위한 설계다. 시방서와 각종 도면 등 공사용 도서를 만드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설계 과정에서는 건물주와 시공사, 구조, 기계, 전기, 토목 분야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주의 요구에 맞춘 설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설계에 대해 건물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필수다. 본설계가 끝난 다음에는 해당 건물이 제대로 지어지는지를 검토하는 감리업무를 수행한다. 기안건축사사무소 김종천 대표는 “건축사는 설계만 하는 게 아니라 건물이 완공되는 공정 전반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 같은 업무의 대가로 건물 시공비 총액의 2~3%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건축사가 되려면=건축사가 되기 위해선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고 건설교통부에서 발급하는 건축사 면허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건축사 면허 시험은 응시 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다. 현재는 ▶건축사예비시험 합격자와 ▶건축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 중 5~9년 정도의 실무 경력이 있는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사예비시험 응시자도 5~14년 정도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 예비시험 응시자들은 대부분 전문대학이나 대학교(5년제) 건축학과 또는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무 경력을 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건축사 업무에 필요한 능력으로 ‘건축·설계 등 전공지식’, ‘의사소통 및 설득 능력’ 등을 꼽았다.

건축사는 주로 건축사사무소에 취업을 하거나 개업을 한다. 일부는 일반 건설회사나 플랜트설계회사 등에 취업한다. 건축사의 연봉 수준은 평균 3376만원(2007년 한국고용정보원)이다. 하지만 건축사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일부 건축사들은 1억5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기도 한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건축사라는 일자리는 신규 건물 수요에 따라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며 “앞으로 재건축 완화 등 주택경기가 살아나면 건축사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배 한마디] 김종천 대표,“건축주·시공사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건물 모형에 대해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종천 대표(中) [사진 = 강정현 기자]

엄청난 위용을 뽐내는 고층 건물들을 보면 ‘저런 건 누가 설계하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산 수영만 대우월드마크, 서울 여의도 트럼프월드 등 유명 랜드마크 건물들을 설계한 기안건축사사무소 김종천(45) 대표에게서 건축사로 일하는 보람과 직업 소개를 부탁했다.

-건축사가 된 계기는.

“고교 시절 본 외화에서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유리로 된 초고층 건물의 외벽에 헬리콥터가 비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그때 나도 저런 건물을 지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건축사의 장단점은.

“내가 설계한 건물이 실제로 대지 위에 지어진다는 성취감이다. 그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또 업무 효율이 높아져 밤샘 작업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작업 자체가 발주처의 요구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고, 사회경제적인 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건축물을 설계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그 위에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의력과 논리성이 가장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수적이다. 건물을 짓는다는 일 자체가 건축주는 물론 분야별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이들을 설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직업 전망은.

“ 최근 불경기의 여파로 건설공사 발주 자체가 줄었다. 그러나 집을 설계하고 짓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다. 장기적으로 큰 폭의 성장은 없겠지만 대신 지속 가능한 직업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건축물을 재테크 수단 정도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선진국을 보면 한국도 머잖아 건축물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글 = 이수기 기자
사진 = 강정현 기자
자료협조: 인크루트 www.incru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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