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경쟁력 있는 정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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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는 제한된 국가자원을 활용해 국민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치행위다.

따라서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생산된 서비스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서는 조정과 타협이 필요하고, 이러한 조정과 타협은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

기원전 그리스에서는 주변 대륙과 해양세력의 침략에 대비하는 최대의 방안을 다양한 주민과 세력을 규합한 이익집단간의 토론으로 보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나 그의 제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은 세상 사는 현명한 이치인 대화록을 집대성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취임 8개월, 원내 제1당 야당총재취임 2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청와대 총재회담이 열린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치의 요체이며 민주주의 공고화 표상인 대화를 시도한 데 의미가 있다.

정치대화에는 당사자나 여야간에 영원한 적이 없으며 반드시 주고받는 이해득실의 접점 (接點) 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번 여당이면 영원한 집권당이라는 관행과 야당 역시 죽기살기식 투쟁만이 정치라 생각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은 거리의 야당투사에게 무조건 박수를 보내는 흑백논리의 제로섬게임이 만연한 경쟁력 없는 정치가 우리나라의 과거 정치현실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런 한국 정치풍토에서 성장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도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로 생각하기보다는 도전과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역시 상대방을 원고 아니면 피고로 보는 판결관리자 공간에 머물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노벨상을 받은 프린스턴대 총장출신이자 미국 42명 대통령 가운데 빅7에 포함되는 지성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도 외조부와 아버지가 모두 목사 출신인 근엄한 집안에서 자라 최고의 명문대학 출신의 과도한 자기과신으로 상대방을 경쟁 도전세력으로 보는 우 (愚) 를 범해 1차대전 후에 자신이 제창하고 국제적 지지를 받은 국제연맹 창안 법률안이 대화 부재로 상원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프린스턴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던 이승만 (李承晩) 역시 일제에의 항거, 미국에서의 외로운 독립투쟁, 국내세력과의 힘 겨루기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친 자기과신으로 야당총재를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도전세력으로 보고 대화와 타협의 공간인 의회를 정치격돌의 선전장으로 만들게 됐다.

최초로 야당이 여당이 된 더 성숙해진 한국의 정치현장에서 전부 획득 아니면 패배라는 과거 정치의 질곡을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최선의 합의를 도출하는 청와대 영수회담의 모범정치가 의회에도 이어져, 단군 이래 최대 위기인 경제 살리기에 국민의 뜻을 모으고 이를 위해 정치권이 하나 돼 국민을 안심시키고 힘을 내게 하는 선행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경제 회생을 위한 여야 협의체 운영은 물론 다시는 정경유착이 없는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후원금.의회제도 활성화,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 효율적이고 강한 의회운영 등의 정치개혁법에서도 여야 모두 머리를 모아 슬기로운 개혁입법안을 통과시켜야 겠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및 핵무기 보유 대응책, 북한정권 붕괴 대비책에도 여야가 흔들림 없는 합의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치의 묘미가 평화.안정.번영 창출을 통해 국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여야 정치협상 과정에서 다소 티격태격 논박이 있는 가운데서도 대화를 통한 타협점 모색과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이 경쟁력 있는 정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선진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고 투명성 있는 정치관행이 한국에서 싹 트고 정착할 때 정경유착 (政經癒着).정치부패가 근절되고 한국경제의 총체적 국제 신인도도 높아질 것이다.

그 같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민주화와 경제선진화를 지향하는 金대통령의 역사적 책무일 것이다.

그리고 의제만 확정된다면 청와대는 대화의 문을 활짝 열고, 대화는 많이 할수록 좋다는 신념을 칼자루를 쥔 대통령이 몸소 보여야 할 것이다.

최평길(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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