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수감 탈북자 김용화씨 눈물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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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한국 땅에서 3년을 불법체류자로 떠돌다가 일본 밀항 직후 해상보안청에 체포된 비극의 탈북자 김용화 (45.전 북한 사회안전부 소속 안전원대위) 씨. 그가 일본의 후쿠오카 오무라수용소에서 네통, 무려 35장 분량의 편지를 본사에 보내왔다.

이중 마지막은 '고국에 보내는 호소문' .이젠 국제고아가 돼버린 그의 조국에 대한 원망.그리움을 함께 담은 하소연을 전한다.

"한국을 버리고 떠날 때는 복수의 마음을 가졌지만 그래도 그 땅에 정의를 사랑하는 분이 있고 (…) 현재 저는 매일같이 기도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탈북자 김용화씨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지난 3월20일 그가 우리 재판부와의 강제퇴거 무효청구소송을 일방적으로 포기한 채 잠적한 것은 2년에 걸친 법정싸움에 지쳤기 때문. 마침 중국측이 "그런 인물이 중국에 거주한 사실이 없다" 는 사실을 통보한 직후여서 지켜보던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그의 4월18일 일본밀항은 예정된 것이었다.

탈북자가 아니라 중국 조선족 밀입국자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김씨가 우리 출입국관리소에 배신감을 삭이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북조선 공민으로 중국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라에 불과하다.

내가 중국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거민신분증 하나로 조선족 취급을 하다니. 한국은 돈을 주고 산 불법 주민등록증을 합법화하는 나라인가.

내 가족이 북조선 당국의 감시하에서 처참하게 살고 있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건가. "

다시 이어지는 그의 편지 글 - "한국의 외국인보호소 수용 당시 담당조사관은 비열하게도 백지장을 들고와 지문검사를 한다고 속이고 손도장을 찍게한 후 강제퇴거명령서에 동의한다는 서류를 만들었다. "

"한국의 출입국관리소는 일본의 요청으로 보낸 서류를 통해 내가 중국인이며 결혼과 이혼까지 한 적이 있고 중국여권을 소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내 민족이라니 부끄러울 뿐이다. "

결국 그에겐 한국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닥치고 말았다.

"내가 머물고 있던 안양 새마을연수원을 떠난 것은 4월7일. 그날 연수원 밭을 경운기로 갈고 샤워를 하던 중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호송차를 끌고와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도주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간 도움을 받았던 국회등에 연락을 취했지만 방도는 없었다.

15일 부산행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녔다.

노동으로 번 돈 9백만원 중 5백만원을 들여 배를 구해 일본으로 향했다.

30여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어느 외딴 섬. 벙어리 흉내를 내며 도움을 청했다. "

일본 법무성은 지난 7월 2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의 판결에 의거, 중국으로의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는데 김씨는 즉각 명령취소청구를 냈다.

그런 김씨를 위해 일본의 가토 히토시 (加藤博)가 주도하는 '김용화를 돕기 위한 모임' 과 엠네스티 일본지부, 캐나다 외국인신부회장, 최정강 목사가 이끄는 후쿠오카 대한기독교협회 등이 지원을 하고 있다.

88년부터 95년6월까지 중국.베트남 땅을 떠돌다가 한국행을 택한 한 탈북자. 그는 이런 심정을 전하고 있다.

"당시 0.5t의 쪽배는 기관고장으로 18일간을 공해상에서 표류를 하면서도 나는 조국의 품에 안기는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조사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1년3개월을 외국인보호소.서울구치소철창에서 보내면서 남은 것은 저주와 원망뿐.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조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

그를 위해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설령 그가 법적으로 탈북자 인정을 받기 어려운 결격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동포를 이국 땅 수용소에 버려둔 채 원칙론만 앞세워도 괜찮은 걸까. 그의 편지 글 한 부분이 가슴을 때린다.

"북한이나 한국에서 일본이 악독하다는 선전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그들은 인도적으로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체험해 보니 오히려 남북한이 더 심한 나라…"

허의도 기자

◇ 법무부 입장 = 김용화씨의 한국 체류 당시 신원보증인을 자처했던 자민련 김일주 의원. 그는 지난 6월 김씨에 대한 '신병 탄원서' 를 냈다.

이에 대한 법무부의 8월12일자 공식답신. "현행 법상 탈북자는 북한 이탈후 외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용화는 88년 북한을 탈출하여 95년 6월25일 서해안으로 밀입국하기까지 장기간 중국에 거주하며 거민신분증을 발급받은 사실이 있어 적용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에서 소송진행 중인 김씨의 신병처리 문제도 우리 정부에서 관여할 사항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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