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매 새끼 젖소 13,000마리 떼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송아지가 하루에 최고 4마리나 죽어나가기도 했습니다. "

정부가 수매한 송아지 1백35마리를 지난 7월말부터 위탁사육해온 경기도 용인의 C농원 대표 金모씨. 그는 최근 설사병.폐렴 등으로 송아지들의 폐사가 잇따라 80여마리로 줄어들자 허탈감에 빠져 있다.

애써 길러온 송아지를 대책없이 죽였다는 자책감에서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농정' 으로 애꿎은 젖소 송아지들이 무더기로 죽어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젖소 송아지값이 5만원대로 폭락하자 소값 안정을 위해 축협을 통해 사들인 젖소 송아지중 폐사.강제도축 등으로 현재까지 30%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농림부와 축협에 따르면 지난 7월 18일부터 8월말까지 젖을 떼기 직전 (초유떼기) 의 젖소 송아지를 마리당 10만원씩 모두 1만7천6백95마리를 수매했으나 7일 현재 폐사 9천2백91마리.강제도축 3천7백17마리 등 전체의 73.5%인 1만3천8마리가 죽었다.

살아있는 송아지는 고작 4천6백87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2천5백49마리를 수매한 서울축협의 경우 지금까지 1천5백여마리 이상이 죽어 1천44마리만이 사육되고 있으며, 사육시설이 비교적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축협 안성목장에서도 수매한 6백65마리 가운데 4백45마리가 폐사했다.

이같은 생존율은 자연폐사율 20~30%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또 살아남은 송아지들도 뾰족한 관리대책이 없어 농림부가 최근 이를 경남하동의 육골즙 제조공장에 무상양도, 오는 19일까지 모두 도축키로 해 그나마 모두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여 있다.

집단폐사 원인과 관련, 축산 관계자들은 "축사시절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지 1주일밖에 안된 허약한 송아지들을 한꺼번에 몰아둔 데다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자 소화를 못시켜 설사병에 걸린 송아지들이 속출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여름 잦은 비로 인해 송아지에게 치명적인 폐렴 등 호흡기 질환이 퍼지는 바람에 집단 폐사를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IMF사태 등으로 수급 불균형이 심화돼 쇠고기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송아지를 매입해서라도 낙농가를 도우려던 것이 준비 소홀로 송아지들을 죽도록 방치한 셈이 됐다고 지적한다.

동물보호협회 금선란 (琴仙蘭) 회장은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어린 송아지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잔인한 일" 이라며 생명존중 차원에서 정부가 별도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사육비 보조.무상증여 등을 통해 송아지를 사육시킨 뒤 외국에 수출하는 방안 등이 검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의준.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