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클린턴 위기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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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세계 야구팬을 열광케 한 홈런기록이 잇따라 깨진 주말이었지만 1억명이 넘는 눈은 인터넷에 매달려 있었다.

US오픈테니스 중계를 하던 CBS-TV는 스타 보고서에 팔려 테니스공이 어디로 튀는지 뒷전이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성추문에 관한 특별검사의 조사보고서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스물두살 난 백악관 견습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저지른 대통령의 불장난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를 탄핵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미국민들은 경제를 잘 이끌고 있는 대통령에게 놀라운 지지를 보이고 있다.

스타 검사가 대통령에게 위증죄 등 11개의 올가미를 씌워도 60% 안팎의 높은 대통령지지율에는 변함이 없다.

이혼사유는 돼도 탄핵사유는 아니란 반응이다.

특별검사가 미의회에 싣고간 두 트럭분 36개 상자가 모두 열려도 클린턴 리더십은 온전할 수 있을까. 백악관 율사들은 탄핵사유가 될 중죄 (high crimes & misdemeanors) 는 범하지 않았다는 반격이다.

하지만 법이 대통령의 자리는 지켜줄지 몰라도 그의 리더십은 지켜주지 못한다. 리더십은 설득력이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을 때 남을 이끄는 힘도 함께 잃는다.

경제위기에 부닥친 세계가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클린턴 리더십의 위기는 우리에게도 남의 나라 불구경일 수 없다.

첫째, 미국 국내정치에 미치는 파장 때문이다.

클린턴은 자칫 자신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금세기 두번째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탄핵을 면한다 해도 약해빠진 레임덕으로는 사회보장개혁 등 클린턴의 남은 의제를 밀어붙일 수 없다.

눈앞에 닥친 11월선거에서 자중지란 (自中之亂) 으로 민주당은 15~30석까지 줄어들 위기에 몰리고 있다.

앨 고어 부통령이 승계한다 해도 선거자금 불법모금 혐의로 또 다른 특별검사가 기다리고 있으며 환경주의자이자 규제주의자인 고어에게서 지금같은 경제활력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둘째, 국제적으로 절름거리는 리더십은 효과적인 외교정책을 펴지 못한다.

이라크가 유엔의 대량 살상무기 사찰을 또다시 거부하고 북한이 미사일시위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면전환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영화속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라크를 응징하려면 이제 폭격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4개 기계화사단과 2개 공수사단이 필요하다.

도덕성에 흠집이 난 군통수권자가 병사들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경제리더십이 삐걱거린다.

클린턴행정부가 제출한 1백80억달러의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요청이 의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선진공업국들의 지원도 덩달아 주춤거린다.

클린턴의 위기는 한국에까지 파장이 미칠 우려가 있다.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에 대한 무역규제가 살아 있고, 구제금융.북한경수로 지원에 이미 의회의 제동이 걸려 있다.

클린턴의 대 (對) 의회 바람막이는 더욱 맥을 쓰지 못할 것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대한 (對韓) 안보공약은 든든하지만 내정간섭이 심함을 알아야 한다.

'재기 (再起) 하는 아이 (come back kid)' 로 유명한 클린턴은 승부수를 경제에 걸고 있다.

백악관이 챙기고 있는 것은 여론조사와 월가의 다우 존스 공업지수다.

리더십이 흔들리면 시장은 '팔자' 로 돌아선다.

세계경제의 견인차는커녕 미국 스스로 불확실성의 잠재요인으로 전락한다면 지구촌은 경제공황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절름거리는 클린턴 리더십의 버팀목이다.

이자율을 낮추고 다양한 감세 (減稅) 조치를 단행할지 모른다.

이는 공화당의 감세정책을 수용하고 IMF지원안을 통과시켜 미국 수출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를 살리려는 때문이다.

클린턴 호가 가라앉을수록 러시아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위기에 대해 개혁의지가 없는 부패상이 지적되지만 클린턴이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고 강력한 공약이 뒷받침했던들 루블화가 저토록 휴지쪽이 되는 상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6개월전에만 고백했어도 러시아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믿는 사람이 많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아 역사가 달라졌듯 후세의 역사가들은 "모니카 르윈스키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경제공황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장규(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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