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기 왕위전]목진석 4단 - 최명훈 6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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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흑, 한칼 맞았다

제5보 (92~120) =바둑이 중반의 험로에 이르면 산과 골이 나타나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폭포가 나타난다. 시야는 안개에 덮여 자욱하다.

풍경이 변할 때마다 두 대국자의 마음도 수시로 바뀐다.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는 좌변을 키우면서 하변으로부터 뻗어나온 백 대마를 위협하는 요소였다.

이 수를 두게 된 崔6단은 비세의 압박감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한번 해볼 만하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睦4단은 짐짓 태연한 모습이다. 바둑은 처음부터 잘 풀렸다. 하변을 돌파하고 좌상 흑진을 초토화하며 최상의 흐름을 탔다.

그러니 구태여 집을 세어볼 것도 없을 것이다.

한데 막상 계산서를 뽑아보면 상황은 만만치 않다.

흑은 좌상 9집.좌변 15집.우상 18집.중앙 2집.우하 5집등 49집에 이른다.

백은 좌하 14집.좌상 5집.상변 8집.우변 12집.중앙 3집에 덤을 보태도 47집반. 睦4단은 곤혹스러움에 입술을 깨문다.

상당히 앞서야 마땅한데 왜 이럴까 걱정하다가 그래도 선수를 백이 갖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유리하겠지 하고 스스로를 달랜다.

흑가 왔다고 '가' 로 그냥 달아나서는 안된다.

중요한 선수를 그런 공배에 쓰다가는 삽시간에 지고 말 것이다.

睦4단은 92, 94로 흑을 압박하며 몇 집이라도 벌어들인다.

흑도 95로 안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백은 기민하게 선수끝내기를 서두른다.

106으로 왔을 때 107은 그냥 109에 막는 것보다 반집 손해. 崔6단은 그러나 장차 '나' 부근의 선수가 대마의 비상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과감히 반집을 내준다. 112, 114가 의외의 호착이어서 崔6단의 입에선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지금 생각하니 105는 '다' 에 두어야 했다.

후회하는 崔6단의 얼굴에 희미하게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일격이 성공했다고 느낀 睦4단의 손길엔 힘이 실리고 있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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