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어디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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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권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빨간 약과 파란 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한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는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권을 원한다. 그렇다면 선택권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차라리 없을 때보다 있는 게 고통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중간고사를 마친 중학생과 학부모들은 올 한 해 동안 숱한 선택을 하거나 누군가가 옆에서 선택하는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기존의 특수목적고 말고도 자율형 사립고도 선택 대상이다. 게다가 일반계고 가운데 가고 싶은 학교를 골라야 한다.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고민하는 중3

오는 7월께 서울시에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율고)가 지정된다. 자율고는 일반계보다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고,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학교다. 올해 중3 학생들은 전기 전형으로 외국어고(6개), 과학고(3개), 국제고(1개), 자율고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한다.

전기 전형에서 탈락하면 후기 전형으로 간다. 1차는 200여 개 일반계고 전체를 대상으로, 2차는 거주지 학군을 대상으로 각각 원하는 학교를 선택해야 한다. 추첨에서 탈락하면 3차에서는 강제 배정된다. 일반계고를 대상으로 고교 선택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내부 보고서를 통해 자율고 도입 뒤의 변화를 예상했다.

자율고 10개와 3년 뒤 변화

자율고가 10개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자율고 전환 신청 의사를 밝힌 서울시내 31개 사립고를 근거로 자율고 10개 교 입학생은 4890명으로 추정된다. 대략 전체 일반계고의 4.7%다. 2009학년도 기준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자는 학교당 48.9명. 10개 자율형 사립고가 종전과 같은 합격 실적을 낸다고 가정하면 3년 뒤 합격자 수는 489명이다. 3년 뒤엔 외고 6곳은 물론이고 세종과학고와 서울국제고,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까지 가세한다. 2009학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이들 학교가 합격시킬 인원은 1557명으로 예측됐다. 특목고의 3개 대 평균 합격률(졸업생의 52% 합격)을 적용해 본 합격자 추정 수치다. 이로 볼 때 자사고 10곳과 외고과학고국제고하나고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합격자 수가 2046명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계고에서 3개 대에 합격시킬 파이가 크게 줄어든다. 2009학년도를 기준으로 225개 일반계고에서 총 3879명을 합격시켰으나 2012학년도가 되면 3125명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일반계고 한 곳당 평균 14.5명만 3개 대에 합격할 수 있다. 전교 15등 안에 들어야 가능해진 것이다. 2009학년도에선 일반계고 한 곳당 17.2명이 합격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자율고 10개만 생겨도 일반계고를 대상으로 하는 고교 선택제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자율고 25개와 3년 뒤 변화

자율고 25개 지정은 일반계고의 시각에선 비극과 같다. 자율고 25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SKY대 합격자는 총 1223명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일반계고의 3개 대 합격자 규모는 2391명이 된다. 2009학년도에서 일반계고 출신 3879명이 2391명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계고 200개의 학교당 평균 11.9명이 3개 대에 합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교 12등 안에 들어야 안정권이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가 자율고를 올해 30개가량 지정키로 밝히면서 예상됐던 것이다. 자율고가 외고 등과 함께 전기 전형에 속하면서 중학교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흡수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처음으로 고교 선택제를 도입한다. 그 결과 특목고·자율고가 훑고 간 뒤 일반계고가 남는 학생들의 선택을 받는다. 일반계고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계고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대부분의 학부모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강홍준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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