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개혁분담' 왜 안하나…각계 "정치 구조조정"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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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권의 살빼기가 시작됐다.

스스로 한다기보다 떼밀려 하는 형국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합동의 정치구조개혁위원회는 국회의원정수 조정 등 37개 개혁의제를 확정했다.

선거.정당.국회 등 3개 분야다.

이런 시도는 과거 몇차례의 대선처럼 몇 조 (兆) 원 설은 안나오지만 지난해 대선때도 상당액이 쓰였다는 것이고,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총선에서 적잖은 돈이 쓰일 것이라는 공통의 우려가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벌써부터 최소 1억원이라는 소문이 이런 노력을 가속화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의제의 기초가 된 것은 각계가 제기한 정치권 개혁요구안이었다.

참여연대.여성유권자연맹.여성단체협의회 등 5개 시민단체가 이미 개혁건의문을 여당에 제출한 바 있다.

선관위도 일찌감치 별도의 안을 만들어 정치권에 전달했다.

그런가 하면 여권이 개혁대상으로 삼았던 재계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정치권 개혁안을 냈다.

고통을 분담하자는 마당에 정치권만 칼자루를 쥐고 휘두를 수는 없는 형편. 여권으로선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철면피 (鐵面皮) 란 소리를 듣는 상황까지 치달은 마당에 적당히 넘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정치권 개혁안중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의원정수다.

지금의 국회의원은 너무 많다는 게 각계의 지적이다.

여권도 이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켰다.

전경련은 지금의 2백99명 의원정수를 2백명으로 줄이자고 주장했다.

3분의1을 줄이자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아예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했다.

선관위는 한발 더 나가 정당명부제에 의한 대선거구제를 주장한 바 있다.

사람을 보고 투표하기보다 지역을 넓게 묶어 정당을 보고 투표하게끔 하자는 것이다.

다른 시민단체들의 주장도 비슷하다.

다만 참여연대만은 "의원수 조정문제를 단지 예산감축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되며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지방의원 감축에 대한 각계의 주장은 국회의원 감축보다 더 거세다.

전경련은 아예 절반을 줄이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분리해 광역은 정당명부제로, 기초는 대선거구제로 바꾸자고 건의했다.

참여연대는 규모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대폭' 이란 표현을 쓰며 감축을 주장했다.

결국 여권이 확정한 37개 개혁의제에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정수조정문제가 포함됐다.

정당구조와 관련해서는 현재의 지구당 조직체계를 폐지하거나 대폭 줄이자는 게 다수의견이다.

전경련은 "지구당 한곳을 유지하는데 국회의원 임기 4년동안 최소 10억원이 들고 4개 정당 8백41개 지구당을 합산하면 2천20억원이 든다" 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며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전경련은 지구당 조직체계를 후원회 조직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선관위도 지구당 조직의 폐지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참여연대는 폐지는 반대하되 운영의 혁신을 기하자는 쪽이다.

결합재무제표 작성압력을 수용한 바 있는 전경련은 정당의 재무제표 작성.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기네한테만 투명을 요구할 게 아니라 정당의 재산목록.자산변동.수지계산표.대차대조표 등을 투명하게 제시, 깨끗한 정치의 모범을 보이라는 얘기다.

전경련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사용내역, 정치자금 입출금 내용에 대해 외부감사를 실시하자는 주장까지 제시했다.

선관위는 아예 후원회 계좌 등 통장을 단일화해 선관위에 등록토록 함으로써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기하자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상의가 주장한 선관위의 사법권 부여까지 합치면 정치자금은 움츠리고 뛸 수 없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애석한 것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확정한 37개 의제에는 이런 부분들이 두루뭉실하게 표현돼 있다는 점이다.

개혁의지가 벌써부터 의아시되게 하는 대목이다.

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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