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정치의 '힘빼기' '힘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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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병 (新兵) 이 교육받을 때 소총의 분해와 결합은 필수과목이다.

이때의 수칙 제1조는 '무리한 힘을 가하지 말 것' .힘이 들어가지 않을 곳에 힘이 들어가면 분해.결합이 안되거나 부속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이라는 힘의 운용이다.

힘의 조화로 말하면 소총의 분해.결합에서보다 정치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정치의 무리한 힘이 한쪽으로 치달을 때 그 부작용은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힘이 발휘될 곳에 발휘되지 못하면 무능한 정치가 된다.

91년의 3당 합당은 여소야대의 파행정국을 타개하는 절묘한 처방으로 보였다.

그러나 무리한 힘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절묘한 처방이 아니었음이 차곡차곡 입증됐다.

합당의 전제로 합의됐던 내각책임제는 한 사람의 파약 (破約) 으로 휴지조각이 됐고 정권후계 경쟁과정에서 '부속' 이 떨어져 나갔다.

후계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주요 부속이 자체분해됐고, 두번째 선거를 치른 후 그 정당은 '한 지붕 세 가족' 이 아니라 '한 지붕 여덟 가족' 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갈 길도 많고 앞뒤로 문도 많다.

조직뿐인가.

문민정부에선 '개혁' 이라는 이름에 '무리한 힘' 이 너무 가해졌다.

실명제가 그렇고 역사 바로세우기가 그러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대. 이것은 무리한 결합인가, 아닌가.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했던 결합은 아니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한 선택이라는 당사자들의 실토에서 알 수 있듯이 목적을 위해 무리한 힘을 가해 손을 잡은 게 사실이다.

무리한 결합에서 또다시 부속이 퉁겨지고 내부분해가 있을 것인가.

여소야대는 어떤 힘으로 극복할 것인가.

누가 퉁겨지고 무엇이 분해.결합되건 국민들은 아마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문제를 제쳐둔 채 정치가 시끄러워지거나 이른바 국제신인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분란에 대해서만은 국민들도 준엄할 것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 비해, 대통령 아들의 국정 농단이 드러났을 때에 비해 열 배 백 배는 준엄할 것이다.

무리한 힘을 가하지 말라는 준칙은 힘의 전적인 부정이 아니다.

적당히 힘이 들어가야 소총의 분해도 가능하고 재결합도 가능하다.

흔히 거론되는 '작은 정부 능률적 정부' 도 결국 불필요한 힘은 빼고 필요한 부문엔 힘을 더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동안 금융에 무리한 정치의 힘이 가해져 책임금융이 없었다.

그것을 시정하자면 불가피하게 힘이 가해져야 한다.

무책임 경영으로 경제를 망가뜨린 책임을 금융에도, 정치에도, 기업에도 강하게 물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 부처를 너무 몰아세우니까 인수위가 무슨 감사기관이냐, 국보위 (國保委) 냐는 비난의 소리가 있었다.

인수위를 임명한 당선자까지 인수위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비난받을 악역이지만 인수위는 적절한 힘을 넣었어야 마땅할지 모른다.

“이 정책을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인력운용계획은 무엇인가” 라고 다그치니까 정부쪽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인적 구성.예산집행 상황이나 보고받고 대통령 취임식 준비나 하는 인수위라면 아마 정권말기의 행정공백,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심각한 지경이 됐을지 모른다.

인수위와 안기부 사이엔 무엇을 제시하라, 못한다 해서 잡음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기관이 법적 지위와 권한이 모호한 인수위에 그만한 고집을 갖지 못한대서야 있을 필요가 없는 기관이 돼버린다.

이 경우는 잡음이 아니라 필요한 힘에 또다른 힘이 적절히 대응한 힘의 한판게임이었다.

노자 (老子) 는 정치지도자를 4등급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통치하고 있으되 그 힘을 민중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제2급 정치가는 민중이 친밀감을 갖고 칭찬받는 사람. 제3급은 민중이 두려워하는 정치가.

제4급은 인기가 없는 것도 모르고 어떤 실패에도 무감각해 민중이 업신여기는 정치가.

이 4등급에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각각 꿰어 맞춰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첫번째의 지도자는 노자시대의 성군 (聖君) 으로는 있을 수 있으나 현대 정치사회에선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힘을 뺄 데와 넣을 데를 제대로 구분하고 그 구분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정치가 필요할 것이다.

김동익 〈전 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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