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중국은 봄날이련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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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베이징을 찾았습니다.
한중문화협회와 중국국제우호연락회가 주최하는
'한중민간우호논단'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요.

지난 1월에도 베이징에 왔었지만
당시엔 당일치기의 아주 짧은 여정이라
중국 민초들의 삶을 엿보기가 쉽지 않았지요.

이번엔 며칠 머무르는 기간을 이용해
이런저런 중국인들과 또 베이징거주 한국인들도 만났는데
한마디로 '베이징은 이미 봄이 아니런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베이징의 택시 기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장사 어떠냐고" 묻자
"마마후후(馬馬虎虎, 그저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리 나쁘지도 또 그리 좋지도 않다는 이야기인데,
택시 기사들마저 '살 판 났다'고 말할 만큼 좋은 때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지요.
"세계 경제가 다 어려운데 당신도 그 어려움 느끼겠느냐"고요.
그랬더니 중국 "남방 쪽에선 어렵다는 말도 나오곤 하는데
내 자신은 피부로까지는 못느끼겠다. 아직은 괜찮다"고 하더군요.

워낙 고달픈 삶에 익숙한 서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베이징은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위기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저녁 만난 몇몇 중국인 친구들 간의 대화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었지요.
이들 중국 친구들의 화제는 단연 '상하이 모터쇼'에 나온 고급 승용차였습니다.
'호화 롤스로이스 승용차 가격이 800만 위안(약 16억원)' 어쩌고 저쩌고 였지요.

술 권하고 담배 권하고 음식을 풍성히 시키는 습관에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더니
문 앞에서 식탁 나기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무려 30~40명은 되더군요.
물론 그 집이 맛있다는 샤브샤브 집이긴 해도
북적이는 식당 모습은 베이징의 봄날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만난 베이징 거주 한 한국인의 모습과 말은 대조적이었습니다.
그가 털어놓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온 손님 접대였습니다.
식사는 그래도 요령있게 이런저런 중국 음식 시켜 접대할 수가 있는데
예전처럼 어디 가라오케 가서 술 한잔 모시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었지요.

베이징의 경우 가라오케 가 보통 양주 한 병 시키면
예전에 800위안 하던 게 지금은 1200위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환율이 1위안에 100원 하던 게 이젠 200원이 넘어 버렸으니,
한 병 마시면 한국 돈으로 24만원이 넘고,
일행이 4~5명 되면 두 병 정도는 필요한데 그러면 술 값만 50만원이 되지요.

복무원들 팁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100만원은 쉽게 나오는 셈이지요.
한국인들이 몰려 살던 왕징에서 연초 많은 한국인들이 집을 내놨는데
대부분 중국인들이 거둬들여 이젠 부동산 가격 하락도 멈췄다고 합니다.

한국인 사업가들이 중국 사업가들 만나는 것도 갈수록 버겁다고 하는군요.
돈 씀씀이가 달라지니 자꾸 궁색해지는 것이지요.
중국 가서 달러 자랑 하던 시절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로 되고 있는 것이지요.

중국 경제는 올해 중국 정부의 목표대로 8%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큰 타격을 받은 부문과 산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문과 산업 또한 중국에 적지 않아
이 둘이 서로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을 하나의 시각과 틀로만 이야기 할 수 없듯이
중국경제도 하나로 뭉뚱그려 분석하던 시대도 지나는 듯 합니다.
地大物博人多, 땅 크고 물산 풍부하고 사람 많은 중국을 상대로
우리의 생존 묘책을 찾는 노력이 절실함이 또 한 번 느껴지는 방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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