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열며]정신개혁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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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송구영신 (送舊迎新) .어느덧 묵은 한해 (丁丑年)가 저물고 무인년 (戊寅年) 의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묵은 때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맞이한다는 희망찬 기대를 뜻하리라. 송구영신은 일면 '혁구경신 (革舊更新)' 과 상통한다.

낡은 것을 개혁해 다시 새롭게 다진다는 뜻이다.

율곡선생은 10년후 닥칠 존망지추의 국가위기 (임진왜란) 를 절감하고 경제개혁과 십만양병 (十萬養兵) 을 주장, '낡은 제도를 혁파해 새로운 제도를 창출하자' 는 전환시대의 논리로 혁구경신을 절규한 바 있다.

나라사정이 급전직하로 변혁을 맞는 때이니 만큼 오늘의 현실로 보아 절실히 요구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제 우리는 구 (舊) 정권이 물러가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환기는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부도사태로 경제 신탁통치' 운운하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나라가 정체성을 잃고 온통 갈팡질팡하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새 대통령당선자까지 '나라가 오늘 부도날지 내일 날지조차 모른다' 고 통탄했겠는가.

이러한 미증유의 불확실성을 안고 우리는 새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해도 너무 했다.

두 전직 대통령과 많은 지도자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정경유착,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과다한 특혜차입, 그리고 정부의 밀실정책과 국제신인도 추락이 한국 위기의 주된 원인이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 (龍) 가운데 하나라고 우리는 얼마나 꼴 사나운 거드름을 피워왔던가.

마구잡이로 돈 뿌리는 졸부들의 해외여행, 과시용 대형 승용차 구입경쟁, 외제가 판치고 국산이 괄시받는가 하면 그야말로 가진 자의 오만은 가관이었다.

과소비.사치.허영은 물론 '믿음' 이라는 도덕적 기초조차 상실해버렸다.

그리하여 '한국이 망하든 말든 국제사회가 지원하지 말자' 는 냉랭한 기류까지 외국언론은 지적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IMF한파' 를 통한 '한국 길들이기' 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새 시대는 새로운 변혁과 창출이 요구된다.

세계는 다원화.정보화.개방화로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점차 천하일가 (天下一家) 의 지구공동체를 지향한다.

따라서 그에 알맞은 장기적 안목의 국가개혁은 필연적이다.

국가개혁에는 제도개혁과 정신개혁이 제기된다.

제도개혁은 행정개혁과 경제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과거 개발독재라는 낡은 모델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세계화시대에 순응병진 (順應竝進) 해 양적인 시장개방과 질적인 상품개발 등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창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

오히려 우리는 IMF시대를 도약의 호기로 역이용해야 하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개혁이다.

우리는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그러나 정신개혁에는 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먼저 국민대화합이다.

대선에서 동서로 나뉘어진 지지구도는 아직 지역감정의 골이 깊음을 보여주었다.

지역.계층.남녀.노소 뿐 아니라 노.사.정 사이의 대화합은 최선의 국민적 요구다.

다음은 발상의 대전환이다.

나라안의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도 어려운 세기적 도전에 21세기를 헤쳐가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세계화와 민족혼이 조화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정신의 창출 및 구현은 최대의 국가적 과제다.

마지막으로 남북 동질성 회복이다.

남북은 단군 할아버지를 조상으로 한 단일민족이다.

따라서 민족적 기질과 관습속에 깊이 뿌리박힌 전통문화의 창달은 최고의 민족적 과제다.

다시 말해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생동하는 국가개혁의 새로운 방향이 구체화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첫째,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강의 재기적을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

사치.낭비.허영을 일소하고 근검절약의 정신을 함양하자. 둘째, 신뢰회복이 관건이다.

우리가 살고자 한다면 동방예의지국은 고사하고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잘 지키는 나라로 인식시켜야 한다.

공자 (孔子)가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인간신뢰' 를 최우선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 국가와 민족장래를 위해 우리가 시장개방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신이다.

최병철<儒道會 사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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