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노란 참외꽃을 닮은 여자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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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지막에 '참가번호 8번'을 불렀을 때 하도 감격스러워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경북 성주군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첫 '참외아줌마' 선발대회에서 30대 부문 금상을 차지해 '참순이'가 된 박영주(37.선남면 동암리)씨는 "무엇보다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바쁜 농사일로 참가를 주저하고 있을 때 남편이 나가보라고 권유했고 참가 신청을 한 뒤에는 워킹연습을 한다, 구호를 만든다며 며칠씩 참외밭을 떠나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대회 당일에도 대전까지 가서 참외를 넘기느라 오후 11시 박씨가 왕관을 쓸 때쯤 겨우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남편은 물론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와 두 딸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다"는 박씨는 "이제 참외아줌마가 된 만큼 행동 하나하나를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말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62%를 차지하는 성주군은 그동안 2년에 한 번씩 참외아가씨를 뽑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속속 도시로 떠나면서 대회에 참가할 아가씨들도 급격히 줄었다. 그래서 올해는 참가 대상자를 직접 참외 농사를 짓는 30~40대 아줌마로 정했다. 30대 우승자(금상 수상자)에게는 '참순이', 40대 우승자에게는 '참금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40대 부문에선 조성옥(42.선남면 선원리)씨가 금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읍.면장이 추천한 27명이 예선을 거쳐 결선에 올랐다. 박씨는 결선에서 '노란 참외꽃을 닮은 여자'란 구호를 내걸었다. 무대에서는 "농사도 1등, 인간성도 1등, 영원한 1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편은 무대에 입고 나갈 옷 한벌을 장만하라고 했지만 친구 한복을 빌려 입고 나갔다"는 박씨는 17년째 참외 농사를 짓고 있다. 3000여 평 참외밭을 일구는 게 처음엔 몹시 힘들었지만 이제는 몸에 익어 괜찮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인 이기후 월항농협장은 "참외에 관한 지식, 용모와 교양, 무대 매너 등을 중요하게 평가했다"면서 "선발된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참외 홍보 및 판촉 활동을 부탁할 생각인데 다들 농사일로 바빠 어떨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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