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전면개방시대,환율불안에 '뭉칫돈' 유입 힘들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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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1일부터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50%로 대폭 확대됨에 따라 본격적인 증시 전면개방시대의 막이 올랐다.

정부가 국내 자본시장의 빗장을 허겁지겁 열어젖힌 것은 금융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의 전면개방은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금력과 첨단의 분석력으로 무장한 외국인들이 사실상 별 제한없이 주식을 매매하게 됨으로써 증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채권쪽도 국내외의 금리차를 따먹기 위한 핫머니들이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시장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기업들도 비상이다.

외국의 기업사냥꾼들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M&A)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증시폭락으로 국내기업의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진 상태여서 외국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경영권 장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긴박감에도 불구하고 당장 뭉칫돈이 쏟아져 들어와 자금시장의 가뭄을 해갈해주길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증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정부가 추정한대로 50조원 가까운 외국돈이 장기적으로 유입될지는 몰라도 환율이 불안해 국가의 부도위기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데 얼마나 빠른 효험을 낼진 미지수라는 것이다.

◇ 주식시장 = 증권감독원은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30% 남짓한 23조원의 신규자금 유입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업계쪽 얘기는 다르다.

대신증권 등 상당수 증권사들은 연내 5천억원 남짓한 정도의 자금유입효과를 기대하는게 온당하다는 의견이다.

가령 지난달 3일 제6차 한도확대로 외국인들은 종목당 26%까지 국내주식을 살 수 있게 됐지만 그로부터 한달간 오히려 4천5백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 (매도 - 매수) 했다.

10일 현재 한도소진종목은 전종목의 3%인 3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한도가 두배 가까이 확대되더라도 외국인 매수세는 한국전력.SK텔레콤 등 일부 우량종목에 국한될 전망이다.

◇ 채권시장 = 부도 리스크가 적은 대기업의 보증회사채를 중심으로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증권감독원도 보증사채에 대한 신규유입 규모를 19조8천억원, 무보증사채 4조2천억원으로 추정했다.

특히 국내금리가 연25% 상한까지 치솟는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의 자금조달비용이나 기업부도.환차손리스크 등을 감안하더라도 국내외 실질금리차는 10%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붕괴로 대기업마저 부도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게 투자의욕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동양증권 김병철 채권팀장은 "현재 회사채시장은 3, 4대 재벌그룹 계열사중 산업은행 등 유력한 은행이 보증한 물량만 소화되는 실정이어서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회사채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고 말했다.

채권시장 개방으로 인한 연내 자금유입 규모는 기껏 1조원 정도일 것이라고 증권업계에선 전망했다.

◇ 정부의 핫머니 대응책 = 증시 전면개방으로 투기성 단기자본 (핫머니) 의 '사정범위' 안에 들게 됐지만 정부로서도 뾰족한 방어수단이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정부는 일단 종목당 30%, 1인당 10%라는 한도를 둔 것을 그나마 핫머니 대책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채권투자에 대한 한도를 둔 것은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할 뿐 이 정도 제한이면 사실상 전면개방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정부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당장은 외환부족 사태를 면하는 게 급한 만큼 핫머니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솔직한 심경이다.

다만 핫머니의 급작스런 유출에 대비, 환율 및 금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아놓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홍승일.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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