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뒷북 행정에 갈팡질팡 식약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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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려했던 대로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그제 석면 오염이 우려되는 의약품 1122개를 공개한 후폭풍이다. 의약품 판매중지·회수 조치로 수많은 환자들과 제약사, 병·의원, 약국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위험 요인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일이 터져서야 대책을 강구하는 고질적인 땜질행정 때문이다. 멜라민 분유, 생쥐머리 새우깡, 기생충 알 김치 등 파문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후진적인 행태를 되풀이할 것인가.

당장 제약업계나 병원은 식약청 조치에 대해 “정부의 잘못을 우리에게 전가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환자들의 불안과 혼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판매 금지된 의약품 중에는 혈압·혈당약이나 심장약, 잇몸질환 치료제처럼 장기 복용해야 하는 것이 많다. 위험 리스트를 작성한 당사자인 식약청이 “유해성은 크지 않으니 이미 복용 중인 환자는 계속 먹어도 좋다”고 설명하니 불안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당초 허가서류가 부실했던 탓에 식약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품목이 서로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시중에 오염 우려 약품이 유통되지 않은 제품까지 판매를 금지했다며 제약사가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주먹구구 행정이 어디 있는가.

물론 ‘석면=발암물질=암’이라는 등식에 과도하게 반응해 범사회적인 공황상태가 초래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석면은 자연상태에서도 존재하며, 고농도를 장기적으로 흡입할 때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식약청은 의약품·화장품의 석면 관련 안전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국민에게 수시로 위험 정도를 알렸어야 했다. 수년 전 경고성 보고서를 제출받고 미국·유럽이 조치를 취한 뒤에도 팔짱만 끼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대니 온 사회가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위험 자체보다 ‘위험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식약청은 몰랐는가.

석면 함유 가능성은 의약품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베이비 파우더 원료를 비롯, 다양한 제품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여전하다. 그런데도 의약품·화장품·식품 이외의 수많은 일용품·기기는 식약청의 손을 벗어나 다른 부처가 관할한다. 정부는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를 통합적·유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사후 대책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중국산 원료·제품에 대해서는 현지 생산단계부터 소상히 추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관련 전문가도 양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