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출신 작가 마타 서울전…내년 1월까지 서울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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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올해 86살의, 작고 꾸부정한 칠레 출신의 작가 마타 앞에는 흔히 마지막 초현실주의자, 살아있는 현대미술의 역사, 그림으로 말하는 철학자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초현실주의의 기수였던 앙드레 브르통이나 멕시코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옥타비오 파스가 이런 말을 그에게 헌사한 사람들이다.

그의 본명은 로베르토 세바스티아노 마타 에초렌. 그렇지만 미술사의 인명사전에는 간단히 마타 (Matta) 라고만 기재돼있다.

어쨋든 마타에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현대미술과 함께 그의 인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21살때 화물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파리에 발을 들여놓은 마타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건축을 배웠고 1937년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릴때 그 옆에서 거들었다.

그리고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최고의 초현실주의 작가라는 찬사를 들었고 제2차대전을 피해 미국에 건너가서는 마르셀 뒤샹과 함께 미국의 실험미술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또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된 아쉴 고르키나 잭슨 폴록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작가이기도 하다.

1947년 브르통에 의해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축출된 후 한때 프로이디안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내 반 (反) 문명주의로 돌아서서 '원시적 상상력의 회복하자' 는 새로운 현대미술을 주장해온 작가다.

이후 그의 작업에서 마야 문명이나 중국 고대문명에 나오는 형상들이 등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근래 15년동안의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마타 작업들이 대거 서울에서 소개되고 있다.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에서 '마타 운수행 (雲水行)' 이란 제목으로 그의 회화 17점과 조각 33점을 전시중이다.

(내년 1월30일까지 02 - 379 - 4117)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상업적이어서 예술의 본래 가치를 잃고 제역할을 못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마야나 중국고대와 같은 비서구적인 고대문화로부터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인간의 삶에 뜻밖의 해답을 내려주는 것처럼 미술도 그래야 한다는게 그의 예술론이다.

서울에 소개된 조각과 회화도 이런 생각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특히 가로6m95㎝ 세로4m7㎝의 대형 회화작업 '지구의 빛' 은 어둠을 가르고 달려오는 별빛이 화면에 가득찬 그림이다.

빛은 그의 작품 곳곳에 인간의 참모습을 가려온 문명의 각질을 깨부수는 '예술의 의미' 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조각작품은 마야유적에서 보이는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입체화한 것과 한자를 형상화한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업이 '히로세미아' .이는 원폭이 최초로 투하된 히로시마와 부끄러움을 뜻하는 말을 결합시켜 만들어 낸 조어 (造語) 이다.

파열해 녹아내리는 듯한 추상의 형태로 원폭투하를 비난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서울 개인전에 맞춰 한국을 처음 찾은 마타는 '예술은 농부가 밭을 갈듯 일상적이고 평범한데서 그 의미를 찾는데 있다' 고 말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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