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김대통령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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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7월21일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총재이던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자유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민주정치의 발전을 한 단계 높였다.

이회창 동지는 21세기 선진한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지도자다.

" 9월30일 이회창 총재선출 전당대회. 명예총재로 추대된 金대통령은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 흔들었다.

"이회창총재를 중심으로 당의 전열을 굳건히 다져 변화와 개혁을 계승하는 정권재창출을 이룩하자. "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지금, 金대통령의 강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부서진 낙엽이 돼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청와대가 李후보를 버리고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李仁濟) 국민신당후보를 밀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의혹을 넘어서고 있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드러나는 정황증거들은 김심 (金心) 의 실체를 양파껍질처럼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신한국당의 대선철로는 언제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金대통령은 일찍부터 공정한 대선관리가 문민개혁의 완성이라는 명분을 세워왔다.

이를 지켜내려면 金대통령은 두갈래 길중 하나를 걸었어야 했다.

하나는 대통령이자 명예총재의 의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여당 명예총재로서 자신의 선언에 맞게 정권재창출을 위해 적절히 당을 이끌어야 했다.

여당이란 집안을 살펴주면서도 공무원이나 정부조직의 동참을 막아야 하는 실로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金대통령은 차라리 당적을 버리고 완벽한 제3자이자 국외자로 남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오히려 엉뚱한 길을 택했다.

명예총재라는 옷은 입고 있으면서도 국민신당의 이인제후보를 도와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金대통령은 직접 그를 지원한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후보에 대한 그의 싸늘한 침묵은 결과적으로 참모들의 신당 지원에 대한 윤허 (允許)가 되고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과 청와대는 속으로 李후보의 잘못으로 지지율이 떨어졌으며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자책 (自責) 의 사유가 있었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이른바 상황변화론이다.

논란은 제쳐두고 설사 그렇더라도 金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엄격한 관리자로 남았어야 했다.

金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이 우리사회 조직의 윤리를 위협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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