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콘돔, 에이즈 해결책 아니다” 발언 사면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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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콘돔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교황은 17일(현지시간) 첫 아프리카 순방에 앞서 열린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콘돔 배포로는 에이즈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위적인 피임법’이라며 콘돔과 낙태를 반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8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의 한 성당에서 파울 비야 카메룬 대통령(左)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야운데 AP=연합뉴스]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콘돔이 아닌 성적 절제가 에이즈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세계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뉴욕 타임스(NYT)는 18일 사설에서 “교황은 콘돔이 에이즈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왜곡했기 때문에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콘돔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을 80% 줄여준다는 조사 결과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프랑스·독일과 국제 구호단체들도 일제히 교황의 발언을 비판했다고 전했다. 에릭 슈발리에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교황의 발언은 공공 보건정책과 인간의 존엄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울라 슈미츠 독일 보건장관은 성명에서 “유럽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콘돔이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도 “콘돔 사용은 에이즈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의 미셸 카자치킨 대표는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70%의 사람이 에이즈로 죽는 국가(카메룬)의 순방을 앞둔 교황의 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 예방 단체인 ‘트리트먼트 액션 캠페인(TAC)’의 정책·연구 책임자 레베카 호데스는 “콘돔 사용에 대한 교황의 반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명보다 교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UNAIDS에 따르면 교황이 이번에 순방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는 2200여만 명에 달한다. 2007년의 경우 전 세계 에이즈 사망자의 4분의 3, 그리고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의 3분의 2가 아프리카 사람들이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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