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마 부인 왔다’ 암호 방송 … 독일 총기난사 피해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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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서부 빈넨덴의 알베르트빌 중등학교에서 학생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15명을 추모하는 집회가 12일(현지시간) 열렸다. 행사장에 참석한 학생 두 명이 손을 잡고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전날 17세 소년 팀 크레치머는 권총으로 15명을 사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빈넨덴 AP=연합뉴스]

“코마(Koma) 부인이 왔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 빈넨덴의 실업계 중등학교 ‘알베르트빌레 레알슐레’에 범인인 팀 크레치머(18)가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던 11일(이하 현지시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이 학교의 교장 아스트리트 한은 즉시 교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알렸다. 그러자 10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사 대부분이 신속히 대피했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문과 창문을 닫아 범인의 공격을 피했다. 이날 총기 사고로 범인을 포함해 모두 16명이 사망했지만, 이 교장의 빠른 대처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독일 ZDF 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코마’는 ‘미친 듯이 날뛴다’를 의미하는 의학용어 ‘Amok’를 역으로 읽은 것이다. 2002년 4월 독일 동부 에어푸르트에서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교육 당국이 비상시에 대비해 만든 암호다.

총기 난사 속에서 살아남은 한 학생은 “교내 방송이 나온 뒤 바로 선생님이 문을 닫았다”며 “선생님은 우리에게 창문도 닫고 바닥에 앉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독일 교육 당국이 마련한 암호 덕분에 희생자를 최소화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독일 북서부 엠스데텐의 한 실업계 중등학교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32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범인 한 명에 불과했다.

ZDF는 이 교장의 적절한 대처를 2002년 에어푸르트의 구텐베르크 김나지움 참사 당시 용기를 발휘해 학생들을 구한 교사 라이어 하이제와 비교했다. 역사 교사인 하이제는 이미 16명을 살해한 범인이 교실 문을 열고 그의 가슴에 총을 겨누자 범인의 복면을 벗겼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나를 쏴라”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범인은 “이제 재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범인 크레치머가 사건 직전 독일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 “무기를 들고 학교에 갈 것이며 빈넨덴이라는 지명을 기억하라”라는 내용을 올렸다는 보도는 오보로 나타났다.

인터넷 사이트에 관련 내용이 올라간 시간은 11일 오후 4시57분이었다. 범행 시작 시간인 오전 9시40분은 물론 크레치머가 숨진 낮 12시30분을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네티즌 누군가가 가짜 글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12일 기자회견장에서 언론 오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해 발표한 헤리베르트 레흐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내무장관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 정부는 12일부터 모든 관공서에서 조기로 달도록 지시했으며 전국 모든 학교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도 주말 경기에서 선수들이 팔에 검은색 띠를 착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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