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컷]새포맷 '전원일기' 인물 이야기 위주 농촌 삶은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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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80년 10월 시작된 MBC '전원일기' (일 오전11시)가 지난달 24일부터 바뀐지 한달이 됐다.

바뀐 내용은 이렇다.

드라마 초기부터 나왔던 양촌리 부녀회장인 종기네 (이수나) 등 17명의 중견 연기자들은 17년만에 물러났다.

대신 금동이 (임호)가 돌아오고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한 임현식.김자옥 부부가족과 그 동생 내외가 양촌리로 들어왔다.

MBC가 내세웠던 변화의 이유는 "같은 인물들이 워낙 오래 출연하다보니 서로 간에 더 이상 내세울 갈등이 없어졌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얼굴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의도다.

'전원일기' 가 바뀌고 새 인물들이 극에 활력소를 불어 넣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원일기' 는 중요한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인 농촌 드라마' 라는 호칭이다.

단순히 배경이 농촌이라고 해서 '농촌 드라마' 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고부간의 갈등이나 이웃간의 불화등 일일극에서 늘상 보는 이야기만 나온다면 이는 농촌 드라마가 아니다.

'농촌 드라마' 에는 농촌의 삶이 녹아있어야 한다.

그간 '전원일기' 에는 불량 종자에 사기를 당하는 농민, 배추값을 올려받기 위해 팔기 전날 농약을 잔뜩 치고는 괴로워하는 모습 등 농촌의 고민이 자주 등장했다.

이런 이야기는 농민들에게 공감대를 주고 도시인들에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농촌의 문제를 일깨워주며 '전원일기' 에 '농촌 드라마' 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지난달 '전원일기' 가 바뀐 뒤 4회 동안은 금동이.임현식 부부등이 양촌리에 들어오는 과정이 그려졌다.

농촌이야기가 아니라 인물 중심의 이야기다.

물론 이는 새 등장인물들의 처리를 위해 필요한 것. 따라서 이것만으로 "이제 '전원일기' 를 농촌 드라마라 할 수 없다" 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러나 다음에 준비된 이야기에도 '농촌' 은 없다.

영남아버지 (김용건)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으로 잘못 알고 해프닝을 벌이며 부부간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다는 내용이 다음편의 줄거리다.

그보다 먼 뒤는 어떨까. "농촌의 현실보다는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다' 고 바라는 농촌의 모습을 그리겠다" 는게 연출자 장근수PD의 말이다.

지금 농민들이 겪는 이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얘기다.

'전원일기' 가 '농촌 드라마' 로서의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것이 가끔은 드라마에 반영돼야 하지 않을까.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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