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온갖 노력 끝내 물거품 이인제 지사 대선출마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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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는 뒤통수를 맞은 분위기다.

청와대 참모들은 최근 며칠 사이 이인제 경기지사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해 왔기 때문이다.

李지사가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탈당 만류를 결국 받아들일 것으로 믿었던게 정치를 모르는 '순진함' 으로 비춰져서다.

참모들은 12일 아침 金대통령과 李지사의 11일 전화통화를 공개하면서 "출마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 이라는 장담도 했다.

그런데도 李지사가 나갔으니 金대통령의 체면이 이만저만 깎여진게 아니다.

참모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李지사를 주저앉히려고 막판까지 할만큼 했다는 느낌은 준다.

조홍래 (趙洪來) 정무수석은 12일 오후11시20분쯤 어렵사리 李지사의 전화를 받았고 출마결심을 들었다.

바로 趙수석은 취침하려던 金대통령에게 상황보고를 했다.

趙수석은 다시 李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께서 걱정하시고, 안타깝다고 하신다.

밤을 새워 심사숙고해 보라" 고 부탁했다.

물론 13일 오전7시 걸려온 李지사의 전화답변은 출마 강행이었고, 이어 李지사는 金대통령에게 '탈당 신고' 가 돼버린 통화를 했다.

통화뒤 金대통령은 "참말 (탈당) 하는 모양인데… 골치아프다.

말을 잘 안듣는 것같아"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고위 관계자는 "李지사가 대통령의 설득은 안들었지만, 특별히 거짓말 한 것은 없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李지사의 결심은 오래전에 선 것같다.

그런데도 고심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청와대의 만류를 '외압' 으로 포장해 경선불복 시비를 교묘히 피해가려는 의도" 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당국자는 "金대통령은 이런 수를 대충 읽고 있다.

추석연휴중 이곳 저곳 전화할 것" 이라고 추가적 압박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趙수석은 金대통령의 '안타깝다' 는 말에 대해 "대통령은 일희일비 (一喜一悲) 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이런 심경 표현는 과거 중요한 정치적 사건때도 한 적이 드물다" 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다음 목표는 동반탈당을 막아 李지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하기는 곤란하다.

선거 개입시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李지사의 비리를 담았다는 소위 '이인제 파일' 에 대해 청와대는 "정치공방속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이지 관계당국이 맡을 일은 아니다" 고 뒤로 빠지고 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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