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신한국당의 '정치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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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의 대선태세와 대선전략을 제3자가 뭐라고 말하긴 어렵다.

밥을 짓든 죽을 쑤든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최근 콩가루 집안같은 그 내부 상황을 보면 단순히 그쪽의 집안문제라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선도 이젠 석달을 조금 더 남겨놓고 있는데 이때쯤이면 후보들의 자질검증과 정책대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국민들 앞에 차츰 차별화가 나타나야 할 시기다.

그러나 올해 대선은 이 시점이 되도록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혼미한 안개국면에 빠져 있다.

후보가 몇명이나 될지, 새 정당이 나올지, 정당과 정당간의 경계선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모두가 신한국당의 혼미한 사정 때문이다.

이인제 (李仁濟) 지사가 출마할는지,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낙마 (落馬) 해 후보교체가 이뤄질는지, 이한동 (李漢東).박찬종 (朴燦鍾) 씨가 딴 상 (床) 을 차릴는지… 신한국당에 도사린 이런 변수 (變數) 들 때문에 신한국당만 멍드는게 아니다.

전체 정치권과 대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각정당이나 국민들이 신한국당의 이런 변수들을 쳐다보는데 바빠 정작 정책대결이나 자질 비교와 같은 문제들은 뒷전이 되고 있다.

대선이란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 의 거래가 신한국당 때문에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한국당의 혼미상태는 정치권에 명분없는 이합집산을 부르고 정치권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조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선 신한국당의 많은 의원들부터 어느 편에 줄을 설지 눈치를 보고 있고, 다른 당의 상당수 세력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채 신한국당 내부를 엿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엔 '대통합정치' 란 말까지 나와 더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다.

역대 어느 대선에서도 볼 수 없던 상황이다.

정치인이 원칙과 소신이 아니라 유리한 쪽에 붙을 궁리로 정치를 하게 만드는 풍토를 지금 신한국당이 만들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집권당의 이런 상황이 임기말의 국정혼란과 정책표류를 한층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근 기아 (起亞)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여당간의 혼선과 불협화음, 우리경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금융.외환불안, 급추락하는 국가의 대외위신등을 보면 국가의 중심이 상실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난국을 맞으면 청와대와 내각이 연일 긴장된 모습으로 대책을 짜내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노력을 보여야 할텐데 그런 모습은커녕 청와대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누구의 출마를 만류한다거나 대안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소리 뿐이다.

아무리 대선이 임박하고 상황이 다급하다 하더라도 정부.여당이 할 일은 하고 질서와 기강은 유지해야 할텐데 여권 전체가 한묶음으로 혼미상황에 함몰돼 버린 것 같다.

신한국당이 정권을 유지할지 못할지는 둘째치고 당장 자기들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나라를 더 엉망으로 만들 것 같아 겁이 날 지경이다.

신한국당이 이대로 가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려울 것은 물론 세기말의 중대한 전환기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의 과정과 모양새까지 그르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점에서 신한국당은 지금부터라도 빨리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분명히 할 일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라도 질서를 잡고 기강을 세워야 한다.

기왕 뽑은 후보를 당차원에서 화끈하게 밀든가, 그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당론을 모아 교체하든가 결론을 낼 일이다.

공당 (公黨)에 공론은 없이 뒤에서 수군수군 귀엣말을 주고받고, 익명으로만 이말 저말을 흘리는 상태를 언제까지 끌고갈 것인가.

경선 탈락자들도 이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통령을 노린다는 사람답지 않게 애매모호한 안개행보를 언제까지 할 작정인가.

빨리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혼미와 불투명이 걷히고 대선정국의 윤곽이 잡힐 수 있다.

도대체 경선에 참여하고도 불복 (不服) 하는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요, 정치도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수준의 이런 저하를 보여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당인 (黨人) 이면 당인답게 처신하고 아니면 빨리 당을 떠나야 할 것이다.

신한국당은 매사를 빨리 분명히 해야한다.

죽도 밥도 아닌 이런 상태는 심각한 정치공해다.

<송진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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