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성문제 '블랙박스' 해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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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녀간 갈등은 왜 일어날까. " 몇몇 전문가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파악하는 시각과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코드 (code)' 라는 전문용어로도 설명하는데, 남자는 '합리적 코드' 를 사용하는 반면 여성은 '직관적 코드' 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남성은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분석하려 한다면 여성은 직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서로 아무리 길게 토론해도 결국은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 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합리.직관등으로 특성 자체를 단정할 순 없지만 남녀가 서로 다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생각에는 동감이다.

지난주 서울지법의 유죄판결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대교수의 여제자 성희롱사건 재판을 쭉 지켜보면서 이 사건은 바로 이러한 '남녀간 코드의 차이' 에 대한 몰이해가 발단이 된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채집을 가면서 민망한 농담을 듣고, 호텔방도 하나만 잡은 교수에 저항했던 여제자는 이 사건 때문에 교수가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믿고 괴로워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교수는 "모든 제자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려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한 것을 여제자들이 쑥덕거려 성희롱교수로 낙인찍혔다" 며 여자들의 오해로 선의의 행동이 왜곡됐다는 주장도 폈다.

증인으로 나온 남녀제자의 시각차도 극명했다.

한 남자제자는 "교수님이 말은 함부로 하지만 성희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여제자는 "지나친 성적농담과 신체접촉을 시도했다" 고 주장했다.

성범죄에서는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의견대립이 늘 나타난다.

피해여성은 얼마나 혐오스럽고 창피했는지를 진술하는 반면 남자들은 "여자도 좋아했다" 고 우긴다.

성 (性) 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관심있는 주제지만 남녀간에 그 접근방식이나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같다.

특히 우리사회는 남자에게는 성의 표현이나 접근이 자유롭게 허용된 반면 여성들에겐 매우 억압적인 상반된 규범이 강요돼 왔다.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적 자유만을 내세우고 여성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에 성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상대방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는 '차이' 에 대한 이해와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만 있다면 좀더 유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텐데….

양선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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