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경영일기>슈퍼맨과 중소기업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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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물주는 인간을 1백%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인물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들은 아니었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은 사장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슈퍼맨' 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 오너 대부분이 혼자서 회계, 품질관리에서부터 신기술개발, 조직관리등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모든 분야를 관장하고 있다.

예전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조그만 규모의 공장을 경영할 때의 이야기다.

벽에다 커다란 그래프용지를 붙여 놓고 영업사원이 수금을 해 올때 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막대그래프를 그리게 했다.

그 옆에 재료비, 인건비, 각종 제세공과금등을 지출한 사람의 그래프가 나란히 그려진다.

어떤 때에는 들어온 돈의 그래프보다 나간 돈의 그래프가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돈을 차용해 지출했기 때문이다.

전 종업원의 영업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느 달인가 공장의 자금이 어려웠던지 매달 잘 주는 월급을 사장인 나에게도 주질 않아 공장책임자와 말다툼을 한적이 있었다.

"이보게 나도 오늘 월급을 가져가야 집안살림을 할 것 아닌가.

이번이 두달째네" 하며 입씨름을 했다.

보통사람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겠지만 공장의 경영은 공장장에 맡겨두었다.

모든 것을 관장할 능력이 없는 나로선 전문경영인을 활용해보자는 뜻이었다.

일부에서는 '우리회사의 사장이 둘' 이라느니 '실제의 사장은 별 볼일이 없다' 는 등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장일에 손을 뗀 것은 아니다.

나는 금속개발분야 일을 열심히 했고 공장장은 회사의 전반적인 살림을 맡아서 했다.

그 결과 나는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노하우를 쌓을수 있게 됐고 경영은 역할을 나눠서 책임과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익힐수 있었다.

중소기업인들은 여러 고비를 넘게 마련이다.

나는 무주택자로서 영구임대주택을 국가로부터 받았는데 공장의 기계를 사기위해 불법으로 그 집을 팔았다.

이로인해 나는 검찰에 기소중지자로 분류됐다.

그후 지방으로 가족과 함께 놀러 갔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서울로 압송됐다.

또 산업재해가 여러건 발생해 노동부, 검찰등에 불려가 고초를 겪었고 공장의 소음공해가 심하다고 해서 인근 주민의 집단민원을 받아 벌금을 냈던 때도 있었다.

그런 일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섰으나 임직원들의 협력으로 극복할수 있었다.

다만 중소기업 사장은 집을 비롯해서 모든 재산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넣고 남은 인생마저도 담보로 맡긴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영을 잘못해서 기업이 부도가 나면 다시는 재기가 불능할 정도로 낙인이 찍히고 심지어 자식대까지 '부도아버지' 를 둔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중소기업인으로 나선 이후 25년만에 겨우 기반을 잡았다.

부지 4천평을 마련해 건평 1천5백평의 제2공장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또 우리의 노력으로 개발한 신기술과 상품이 미국과 일본의 인정을 받아서 이달중에 수출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 역시 작은 회사지만 책임과 권한을 나눠 경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한중(성용금속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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