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성자금 '헷지펀드' 바트貨 폭락사태 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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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동남아 금융위기에 헷지펀드로 불리는 투기성 자금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태국 바트화의 경우 이달초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하기 전만 해도 시장상황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 고정환율 통화의 대표격이었다.

시장이 어떻게 변해도 환율은 변하지 않으므로 이익도 없지만 손해도 없는 '외환리스크 제로' 의 통화였다.

이때문에 각국 외환딜러들은 위험회피용으로 평소 바트화를 많이 사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태국의 실물경기가 나빠지고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잇따르자 딜러들 사이에 '바트화가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돼 있다' 는 판단이 퍼지게 됐다는 것. 딜러들이 '언제 바트화를 팔까' 하며 시기를 보던 중 결정적으로 불을 댕긴 것이 바로 투기성 자금이라고 외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짧은 기간에 치고 빠지는 게 특징인 이들 투기자금은 평소에는 바트화를 거래하지 않다가 올해초부터 슬슬 선물거래를 통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지난 4~6월이후 바트화 현물을 지니지도 않은 투자자들이 1개월~1년 뒤에 결제해주는 조건으로 바트화를 팔아 치우는 '공매도 (空賣渡)' 에 일제히 나선 것. 이것이 외환시장에서 바트화 현물의 팔자 주문으로 이어져 바트화 폭락을 촉발시켰다는 설명이다.

결국 일찌감치 바트화의 공매도에 나선 투자자들은 비싼 값에 팔아 돈 (달러나 엔) 을 챙긴 뒤 폭락한 시세에 바트화를 사들여 결제해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싱가폴 외환시장 딜러 경력이 있는 한 종금사 간부는 "선물쪽에서 팔자 주문이 자꾸 이어지면 투기자금이 개입돼 있다는 심증이 간다" 며 "현물거래도 곧 이를 따라가는 분위기가 있어 헷지펀드는 그리 큰 돈을 갖지 않아도 시장을 충분히 흔들 수 있다" 고 진단했다.

헷지펀드는 주로 중앙은행의 자국 통화 방어능력이 약한 곳을 집중적인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국의 경우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를 넘지만 곧 만기가 닥치는 외채및 바트화의 선물매입 결제분을 빼면 실제 지닌 외화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헷지펀드도 이 점을 감안해 태국의 바트화를 처음 공략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번 동남아 외환위기에는 소로스등 미국계 헷지펀드도 개입했지만 일본계 자금을 빌려 투자해온 헷지펀드들이 많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외환시장에서는 이들 투기자금의 다음 공략대상은 홍콩이라는 설이 그럴 듯하게 퍼져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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