競選 심판관 역할 강화에 무게 - 김영삼 대통령, 대표서리체제 택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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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이튿날인 1일 국무위원.신한국당 당직자들을 불러 국내문제를 챙겼다.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은“金대통령의 기(氣)가 살아난 것같다.경선과정이 뭔가 달라질 것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런 金대통령이 별도로 만난 이회창(李會昌)당대표로부터 대표직 사퇴서를 받고 곧바로 이만섭(李萬燮)고문을 대표서리로 임명했다.李대표쪽에서 보면 金대통령이'의외의 선택'을 한 것이다.

당초 李대표측에선 대표직을 비워두고 박관용(朴寬用)총장이 대표 직무를 맡는 대행체제를 구상했다.

그러나 범민주계 모임인 정발협이 앞장선 반李대표측에선 공정 경선을 위해서는 대표서리 체제가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대표자리를 채워둬야 李대표의 무기인'대세론'을 막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왔다.두가지 견해중 金대통령은 반(反)이회창쪽의 전략과 논리를 받아들였다.

李대표쪽으로선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당장 金대통령의 의중이 李전대표측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李대표가 원했던 총장권한 대행체제로 가지 않은 것은 더 이상 프리미엄을 줄 수 없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물론 청와대는 공식적으로'김심(金心)'의 중립의지가 李대표서리 지명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하루라도 대표가 없는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광일(金光一)정치특보는 金대통령의 '중립'을“단순한 방관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조정하겠다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했다.金특보의 발언은 金대통령이 불공정 시비가 나오지 않게 하는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金대통령이 바라는 '역할'은 무엇인가.우선 힘있는 경선 심판관으로 나선다는 것이다.경선과정에서 金대통령이 우려하는 대목은 과열로 인한 일부 주자들의 이탈등 후유증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당의 기존 관리체제를 유지해야 金대통령 자신의 의중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관심은 李대표서리를 통해 어떤 형태의 김심이 전달될 것이냐다.또다른 관계자는“김심이 특정 후보를 선호하는 형태로 개입하지는 않지만,대통령의 눈밖에 나서는 승리가 어렵다는 인식을 분명히 심어주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李전대표든지,아니면 다른 주자든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면 밀어줄 수 없다는 의중을 이만섭체제의 등장으로 가시화했다는 지적이다.이런 새로운 사태가 경선정국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더 두고볼 사항이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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