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에선 서행 운전을 … " 9년째 등교길 교통정리 문서봉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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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광주 북구 중흥동 효동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는 학생들이 등교하는 날이면 오전 7시 30분부터 어김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지킴이' 문서봉(60)씨.

노란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문씨의 교통정리는 웬만한 경찰관이나 군인보다 절도있고 세련됐다.

그는 "베트남에 파병됐을 때 수송부에서 탱크.장갑차를 지휘한 데다 학교 앞에서 9년째 교통정리를 해 몸에 밴 것 같다"며 웃음을 짓는다. 그는 이 학교 여자 핸드볼팀 코치로 일하고 있다.

"학교에 부임했더니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드물지 않게 나더구먼요. 그래서 내가 해야 할 또 다른 일이라 생각하고 교통정리에 나섰죠."

그는 낮에는 운동장 한편에 있는 체육관에서 지낸다.

'할아버지 코치님'으로 불리던 문씨는 46년 전 광주서중 2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베트남에서 귀국해 제대한 뒤엔 전남지역 학교의 순회 핸드볼 코치로 나섰다. 그간 효광여중.송정여상.보성여상.해남 북평중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전지 훈련과 대회 참가 때문에 호루라기를 불지 못할 때는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문씨는 "이제 '교통정리 선생님'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그만둘 수도 없다"며 "운전자들이 제발 학교 앞에서만이라도 천천히 운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구두훈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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