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막다른 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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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8강전>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제11보(96∼108)=백△의 응수 타진과 흑▲의 외면이 싸늘하게 교차한다. 이런 장면에서 ‘참고도1’ 백1로 나가고 싶은 것은 거의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 하지만 흑은 2로 잡아버릴 것이다. 보통은 귀가 크지만 지금 형세는 귀를 파괴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힘들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백에겐 석 점이 아무 맛 없이 죽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그렇게 두터움을 내주면 저쪽 좌변에 떠 있는 흑의 미생마는 손도 대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귀는 3으로 제압해도 4로 준동하는 수가 있다.

이창호 9단은 96으로 인내했다. 97, 99로 회돌이를 당하자(100=이음) 백△의 위치가 이상해졌지만 그런 체면은 잠시 접어 두고 전력을 기울여 석 점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다시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살려놔야 큰 변화를 꿈꿀 수 있는 것. 한데 이세돌 9단의 101이 조용히 의표를 찌르고 나온다. 검토실의 예상은 ‘참고도2’ 흑1로 뻗는 수. 6까지 산 뒤 백은 A의 절단과 B의 움직임을 맞보게 된다. 그래서 백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세돌은 101로 살짝 비켜서며 ‘큰 변화’를 막아버린다.

이창호 9단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수양이 깊은 이창호지만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절감하고 있다. 그는 102로 나가더니 108까지 우지끈 끊어버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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