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로비 의혹 → 현대차 수사 → 총수 구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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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7면

세종증권 인수 비리 사건을 계기로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수사의 동선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수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발화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금융권 마당발’로 알려진 김재록씨가 대검 중수부에 체포된 것은 2006년 3월 23일. 김씨의 구속영장에 나온 혐의는 신동아화재 인수 로비, 쇼핑몰 업체의 은행 대출 로비 등과 관련해 14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것.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판박이

그때까지만 해도 수사는 단순 로비 의혹에 맞춰지는 듯했다. 검찰은 당시 브리핑에서 “앞으로 김씨에 대한 수사 방향은 부실기업 인수 과정에서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금융기관 대출 비리로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를 구속한 지 이틀 만인 26일 전격적으로 현대차 양재동 본사 등을 압수 수색했다. “김씨가 현대차에서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현대차 임직원은 한 명도 소환하지 않은 상태였다. 곧이어 현대 계열사인 글로비스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이 확인됐고 이주은 사장이 구속됐다. 같은 달 29일 검찰은 현대차에 대한 전면 수사를 선언했다. 김씨를 체포한 지 6일 만에 수사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이다. 다음달 6일에는 정몽구 회장 부자의 소환 방침을 밝혔다. 그로부터 20여 일 후인 같은 달 28일 정 회장은 비자금 1200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이 수사는 2005년 10월 청렴위 제보와 12월 현대차 내부자의 비자금 제보 등을 토대로 이미 5개월 간 ‘숙성’돼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은밀하고도 신속한 수사에 국내 굴지의 재벌인 현대차 그룹도 맥없이 ‘총수 구속’이란 치욕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정 회장으로 막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5월 11일 검찰은 정대근 농협 회장을 체포했다. 정 회장은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를 파는 대가로 현대차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현재 수감 중이다. 농협과 정대근 회장은 이번 사건에서도 핵심 수사 대상으로 떠오름으로써 두 사건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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