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보증 받는 대신 16개 은행‘족쇄’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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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의 해외 채무 지급보증 대상인 18개 은행 중 한국씨티·SC제일을 제외한 16개 은행이 임원의 연봉 삭감 등을 담은 경영이행약정(MOU) 세부이행계획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는 대신 일종의 족쇄를 찬 셈이다.

주재성 금감원 은행업서비스본부장은 11일 “한국씨티 등도 곧 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18개 은행의 계획서 제출이 완료되면 14일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씨티 등은 해외 대주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중소기업 대출과 같은 실물경제 지원과 관련해서는 MOU를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개별 은행의 신청에 따라 설정한 지급보증 한도를 기초로 국회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지급보증 이행계획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MOU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지급 보증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연봉 삭감 등의 자구안은 마련하지 않았다”며 “다만 중소기업 대출 지원 등과 관련해서는 금감원과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 측은 “현재로서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16개 은행은 이행 계획서에 ▶은행장 등 임원 연봉 삭감과 스톡옵션 축소 ▶정부의 외채 대지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구 노력 ▶자본 확충 계획 ▶중기 대출 확대와 가계 대출 부담 완화 계획 등을 담았다. 그러나 은행들은 가급적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외채를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으면 임원 봉급 삭감 등 비용 절감과 함께 실물경제 지원 등의 의무를 져야 하고, 그만큼 감독 당국의 경영 간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MOU 계획서엔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어떤 기업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금감원은 MOU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지급보증 수수료 인상, 임원 제재, 보증 채무에 대한 담보 제공 등의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의 경영 간섭이나 제재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가급적 자력으로 해결해 보고 최악의 경우에만 정부 지급보증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급보증을 받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에선 금감원의 감시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급보증을 받지 않는 은행일지라도 중소기업 지원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임원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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