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자전거로 떠난 서울역사 탐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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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자전거 도로에 문화 콘텐트를 깔아야 합니다. 자치단체들이 지역 문화 유적지에 작은 푯말이라도 달고 자전거로 둘러 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김기덕(사진)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10일 제자 30여 명과 한강 뚝섬유원지에서 광진교 인근까지 ‘인문학과 함께하는 자전거 역사탐방’을 했다. 한강의 동쪽으로 거슬러 오르는 이들의 ‘시간 여행’은 오전 10시30분부터 세 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자전거로 달리다 중간 중간 쉬어가며 김 교수의 강의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한강 나루터의 역할’입니다. 지금의 광진교 인근은 ‘광나루’라 불리던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였지요. 한강의 지형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지역은 물살이 약한 곳이기 때문에 나루터가 발달했습니다.”

조선시대 광나루는 한성에서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의 간선로는 아니었으나 임진왜란 뒤 파발로가 지나는 지역이 되면서 중요성이 커졌다고 한다. 한양의 주요 운송로였던 한강의 명승지와 주요 나루터를 기록한 겸재 정선의 ‘경교명습첩’에선 ‘광진’ ‘송파진’ 등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 서울의 중심부는 한강의 동쪽이었죠. 광나루 북쪽으로 아차산-용마산을 넘어 수락산까지 군사 기지인 ‘아차산 보루성’이 20여 개가 넘습니다. 북에서는 고구려가 내려오고, 백제는 남쪽에서 대치하던 역사적 격전지에 우리가 와 있습니다.”

김 교수의 역사 강의는 퀴즈로도 이어졌다. 광진교 남단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는 몇 개 동의 윗부분이 비스듬하게 삼각형으로 잘린 기하학적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남쪽에 위치한 풍납토성 중심부에서 봤을 때 안각(眼角)의 27도 이상을 가리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높이가 제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간 한강변을 자전거로 다니다보니 역사학자의 눈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문화 유적지에 인접한 자전거 도로에 조그만 표시와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교통과 편의성을 위주로만 자전거 도로를 만들다 보니 주변의 역사문화 유적지와의 연결이 끊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교수는 건국대 인문대 차원에서 자전거 역사탐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탐방 팀을 함께 이끈 같은 과 권형진 교수는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의 엔진은 ‘인간’”이라며 “인간이 중심이 되고, 목적지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경험을 즐긴다는 면에서 자전거는 인문학과 닮았다”라고 말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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