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중 ‘전략적’관계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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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물이 깊어야 배가 높이 뜬다(水漲船高)’는 말은 한·중관계의 현주소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 양국은 경제협력을 넘어 정치와 안보를 포함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였다.

이것은 양자관계를 넘어 지역과 국제문제에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이 깊어진다는 것은 이해의 충돌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따라서 한·중 간 전략관계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섬세한 대중국 외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양국의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일이다. 한·중 양국은 연간 무역규모 1600억 달러, 연인원 600만 명이 상호 방문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착시가 나타났다. 최근 중국 내 반한 감정이나 협(嫌)한류, 한국의 반중 감정은 교류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근거 없는 ‘천한 중국(humble china)’과 ‘허풍선이 한국’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고 눈높이를 맞추어가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의 신뢰부족은 무제한적 정보가 소통되는 현실에서 국가 간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전략관계를 위한 비전의 문제다. 올림픽 이후 중국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원대한 구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동맹으로 무장한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넘어 중국 스스로 능동적으로 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국의 눈에 한국은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변화하는 중국에 대처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한국의 대전략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사실 한·중 양국은 전략관계를 구축했으나, ‘어떤 관계를 특정하기 어려울 때, 길게 본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그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다시 말해 양국 정상을 비롯해 빈번하게 접촉하고 다양한 전략대화를 시도한다는 ‘전략의 그릇’을 만들었으나 여기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지는 남겨진 숙제다. 이것은 유사한 관계를 맺고 있는 파키스탄·인도·러시아와의 관계를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예컨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는 국제관계의 준칙, 지역 질서, 인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강령까지 담고 있다.

이러한 원인의 하나는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 때문이다. 5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비핵 개방 3000’ 정책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지 못했고, 올림픽 직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된 회담에서도 비핵개방 3000의 새로운 버전인 ‘상생과 공영’을 우리가 언급하기는 했지만, 중국은 기존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지지를 유보하였다. 이것은 북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없다면 지역안보에 대한 전략적 논의도 한계가 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또 하나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과도기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이 남겨준 유산’이라고 하면서도 동맹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한·중관계가 한·미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잃는 제로섬 게임도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 한·미·일 군사협력의 확대, 미사일방어체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지혜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을 공고화할수록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주목한다는 인식이 아니라,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교집합을 넓혀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현재 우리의 주변환경은 동맹이라는 한 우물을 깊이 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넓게 파야 동맹도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억울하겠지만 한국 외교안보 라인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새길 필요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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