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월드컵 축구와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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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 월드컵은 꿈만 같은 사건이다.1954년 취리히에 처음 출전했던 우리는 그 후 세번이나 본선에 진출했으며 2002년에는 주최국이 된다.비록 일본과의 공동주최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오히려 공동주최로 말 미암아 막대한 건설투자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과의 역사적인 적대의식을 해소할 계기로 삼을 수 있어 좋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양과 베이징(北京)에도 예선 8개조 중 1개조6게임 정도씩을 배정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아시아의 대화합(大和合)은 없을 것이다.정몽준(鄭夢準) 국제축구연맹 부회장이 아시아리그 창설을 제안한 마당에 그러한 선례 를 만들 수만있다면 아시아인들의 협력방식은 서양인들에게도 참신한 충격이 될것이다.그리고 나서 우리는 월드컵 이후를 바라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가 된 것은 제국주의 영국이 스포츠 외교의 금자탑을 완성한 것이다.대영제국은 일찍이 세계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통치수단으로 영국의 스포츠 중 축구를 수출했다.4각의 라인(線) 안에서 힘과 기량을 다투되 룰(규 칙)을 지키게 하고 심판(지배자)의 명령에 복종케 함으로써 식민통치체제를공고히 하려 한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정복할 땅이 남아 있던 19세기만 해도 축구는하지 않았다.양쪽 끝(end line)을 터놓고 네번 공격마다10야드 이상 전진하면 공격권을 계속 갖게 하고, 끝 라인을 넘어서면 6점을,그리고 공을 차서 골대를 넘기 면 1점을 가산하며,전진 없이 골대만 넘길 때는 3점을 주는 미식축구를 했다.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 선을 터서 울타리(fence)를 만들고 이 울타리를 넘기면 무제한 뛰게(home run)하는 야구를 했다.영국도 국내에서는 럭비와 크리켓을 해 왔는데 럭비는 미식축구와 같이 끝선이 없고 크리켓에는 사방 어디를 봐도 라인이 없다.지금 미국과 캐나다는 라인을 없애고 울타리만 친 아이스하키를 한다.그리고 유럽에서조차 이제는 선과 울타리가 멀리 한쪽에만 있는 골프를 시작했다.
축구가 4각의 정글이라면 미식축구와 야구는 미완(未完)의 대륙이다.미식축구와 야구는 변경(frontier)을 개척하던 미국인의 스포츠였다.
과거 목동들이 해변가의 조약돌을 나무등걸로 치던 골프는 우주개척시대에 맞는 스포츠다.티(tee)위에 공을 놓고 장쾌한 드라이버샷을 날리고는 드넓은 초지를 지나 숲과 언덕을 넘어 그린에 도달한 뒤 잔디 위에 공을 굴려 구멍에 넣는다 .강하고 힘찬 것만이 아니고 정교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춰야 하며,그 결과 타수가 적은 것에 상을 주는 환경보호적인 두뇌운동이다.너무젊어도,너무 늙어도 어려운 지도자들의 게임이다.
우리는 월드컵의 함성을 준비해야 한다.인류 최대의 스포츠축제를 치르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문명세계의 질서에,그리고 이제 만개한,대영제국이 전파한 민주주의와 세계무역에,근대사회의 건설이라는 선물에 축배를 들어야 한다.그러나 정보화사회 에서 우주를경영해야 할 우리는 축구라는 4각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21세기의 세계경영을 위해서는 선을 넘고 울타리를 넘어 전진해야 한다.심판에 절대 복종하는 문명에의 동참시대를 뛰어넘어 새문명을 창출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임무마저 갖게 된 우리는스스로 심판이 되고 경기자가 되는 골프를 치게 해야 한다.우리의 산천을 개발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퍼블릭골프장 건설에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골프문화는 철저히 바꿀 필요가 있다.골프 종주국인 영국에 가 보면 동네할머니와 택시운전사가 다같이 즐기는 서민운동이다.동네마다 있고 잔디도 있는 그대로이지 우리처럼정원 같이 가꾸지 않았다.식당도 그렇게 요란치 않고 목욕탕도 없으며 탈의실도 조촐하다.사장도 없고 전무도 없다.세금도 그렇게 없다.우리의 골프도 최소한의 인원과 관리로 서민들의 놀이터가 돼야 할 것이다.또 동네의 경로당도 되고 동네잔치도 하는 문자 그대로 컨트리.클럽이 돼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골프의 진취성과 리더십으로써 월드컵의 영광을 우주정보시대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閔丙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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