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야구 예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가 2004년 21세기 첫 여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애를 먹은 종목은 다름 아닌 야구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리스는 야구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 규격의 전용 경기장을 신축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TV 중계나 경기장 관리 등의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입장권 매출이 부진한 것은 그래도 참을 만했다. 거액을 들인 새 경기장이 고작 올림픽 32경기를 치르고 난 뒤엔 무용지물이 된다는 아픔에 비하면 말이다.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얻은 그리스는 대표팀 선발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선수층이 얇고 수준이 떨어져 미국에 거주하는 그리스계 선수들을 긴급 수혈했으나 성적은 8개 팀 중 이탈리아와 공동 꼴찌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올림픽 종목을 재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표결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은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퇴출’이 결정됐다. 실제로 200여 IOC 회원국 가운데 야구 경기가 성행하는 나라는 20여 개국밖에 안 된다. 그것도 미국, 캐나다, 카리브해 연안 등 북중미와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에 치우쳐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스포츠여서 거부감이 많다는 설명도 있지만 반미 국가인 쿠바가 야구에 목을 매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IOC에서 가장 힘이 세고 표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야구에 도통 관심이 없다. 마치 한국 남자들이 군대 시절 축구 이야기를 하는 걸 여성들이 지루해하듯 말이다. 2012년 개최국인 영국도 야구의 친척뻘인 크리켓을 즐기지만 제대로 된 정식 야구장 시설이 없는 건 그리스나 마찬가지다.

밥보다 야구가 더 좋다는 한국 팬들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그네들이 아직 야구의 묘미를 맛보지 못한 탓이라 치부하면 아전인수격 해석일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짜릿한 승부, 위기 뒤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는 형평성, 제대로 맞힌 공은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는 의외성…. 야구를 인생의 축도라 일컫는 것은 이런 모든 극적 요소가 한판 승부에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은 그런 야구의 진수를 한껏 펼쳐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무도 예상 못한 값진 우승을 축하한다. 더불어 2016년 올림픽에서 백구의 향연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퇴출당한 축구가 곧바로 다음 대회에서 복귀했듯이 말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