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막걸리.관광버스.善心도시락 선거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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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경남진주에 사는 농민 鄭판화(67.진주시지수면금곡리)씨는 『이번 선거처럼 푸대접을 받아보기는 평생 처음』이라며 푸념아닌 푸념을 한다.
鄭씨의 「섭섭한 마음」은 이렇게 시작됐다.지난달 31일오전.
마을회관 앰프에서 『오후2시 진주을 합동연설회가 진주 동명고등학교에서 있다』는 마을이장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鄭씨는 「유세장에 가면 먹을 것이 많을 것」이란 기대에 점 심 밥술을 뜨는 시늉만 하고 마을 어귀로 나갔다.그런데 자신을 「모시고 갈」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고 동네 주민 20여명만 서성이고 있었다.鄭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주민들이 유세장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로 몰려가자 자신 도 덩달아 올라탔다.
후보 5명의 연설이 모두 끝난 오후5시쯤.운동장 뒤쪽에 내내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탓에 배도 고프고 다리도 저려왔다.도시락을 갖다 줄 「구세주」가 기다려졌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찾아주는 후보 관계자는 끝내 나타나지않았다.봉 투는 커녕 음료수 한잔 얻어 마시지 못한것이다.어쩔수 없이 주변 골목길 식당에서 돼지국밥과 소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눈이 좀 뜨이고 살 것 같았다.14대 총선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관광버스를 동원해 주민들을 실어나르는 일은 기 본이었다.그때는 「융숭한 대접」이 뒤따른 탓에 합동연설회가 있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텅비다시피 했다.으레 막걸리와 푸짐한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간혹 담너머로 「봉투」까지 건네지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일 정도다.진주만 유독 이처럼 상황 이 바뀐 게아니다.대부분의 농촌이 마찬가지다.
경남산청군단성면 강누마을 이장 하명환(河明煥.48)씨는『이번선거에서는 후보나 운동원들이 찾아다니며 선물.봉투를 돌리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경남 의령-함안에 출마한 민주당 이정환(李正煥.35)후보는『여당이건 야당이건 관광버스를 동원해 유권자들을 유세장으로 실어나르고 점심도시락을 주는등 노골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 후보진영 관계자는 『이제 공공연히 관광버스 동원이나 향응제공을 했다가 적발되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후보들 사이에확산돼 눈에 드러나는 불법선거 운동은 생각지도 못하게 됐다』고말했다.
진주=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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