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환의 니하오 베이징] 부촌장님 된 탁구 마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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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24면

덩야핑(왼쪽)과 필자

가까이에서 직접 본 덩야핑(鄧亞萍·35)에 대한 첫인상은 ‘어, 예쁘네’였다.
현역 시절 TV에서 봤던 덩야핑은 이랬다. 1m50㎝의 단신. 머리는 질끈 묶었고, 표정은 차갑다. 서브를 넣기 전에 꼭 손바닥을 테이블에 한 번 쓱 댄다. 스카이 서브에 이은 날카로운 스매싱. 덩야핑은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이었고, ‘마녀’였다. 탁구라는 종목이 덩치가 크다고 유리한 건 아니지만 저렇게 조그만 선수에게 한국 선수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게 화가 났었다. 덩야핑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선수’였다.

지난 5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 부부장(부촌장) 겸 대변인이 선수촌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녀가 바로 덩야핑이었다. 세련된 헤어스타일, 활짝 웃는 얼굴, 유창한 영어에 자신감 넘치는 태도. 서른다섯 살짜리 선수촌 부촌장은 결코 얼굴 마담이 아니었다.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은 메인스타디움 옆에 있다. 올림픽 파크를 새로 조성하면서 메인스타디움과 수영장, 선수촌,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다 넣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선수촌에 입촌한 1만6000여 선수단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선수 출신 부촌장이 있다는 건 또 다른 힘이 된다. 1일 입촌한 한국 선수단은 5일 정식 입촌식을 한다. 덩야핑 부촌장과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다.

문(文)과 무(武)를 겸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덩야핑이 바로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한 외신기자가 덩야핑 부촌장에게 물었다. “현역 시절 우승을 몇 번이나 했나?” 덩야핑의 대답은 “2등 한 기억이 없다”였다.

덩야핑의 현역 시절 성적을 한번 보자.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단·복식 2관왕 ▶91년 지바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우승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복식 2관왕 ▶95년 톈진 세계선수권 전관왕(단·복식, 단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관왕 ▶97년 맨체스터 세계선수권대회 전관왕.

정말 그랬다. 그녀는 무적이었다. 한국의 현정화(현 대표팀 코치)가 여자 단식 세계 1위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덩야핑과의 맞대결에서는 세 번 모두 졌다.

덩야핑은 97년 은퇴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덩야핑은 중국의 인민영웅이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특별히 학벌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노팅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탁구 마녀 덩야핑이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공부를 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은 그저 그랬었다.

그런데 그 덩야핑이 자신만만한 행정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기에 참 좋았다. 덩야핑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바란다. 목표인 ‘텐(금메달 10개)-텐(종합순위 10위)’을 달성하길 바란다. 더불어 선수들이 덩야핑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기 바란다.

요즘에는 한국에도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병행이 힘들다면 순차적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가는 길은 거의 한정돼 있다.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정말 실력이 있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고, 대부분은 운동과 상관없는 개인사업을 하거나 주부의 길을 걷는다. 간혹 소속팀이었던 은행이나 회사에서 일반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도 은퇴 후 스포츠 행정가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준비했던 선수가 있다. 축구의 홍명보 코치다. 그는 실력 있는 축구 행정가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프로팀 LA 갤럭시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영어를 익히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의 SOS를 받고 대표팀 코치로 합류했지만 본인은 극구 사양했었다. 자신의 목표는 축구 행정가지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홍 코치가 빨리 임시직을 벗고, 행정가 수업을 했으면 한다. 무(武)에 문(文)을 겸비한 스포츠 행정가도 나오고, 지도자도 나오고, 선수 출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탄생하는 장면을 중국 베이징 한복판에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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