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편집자’ 역할이 중요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1. 젊은 여성들이 많이 가는 카페에 가보면 아직도 ‘셀카’는 전성시대입니다. 휴대폰 카메라를 손에 쥐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엔 아랑곳 없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의 활약은 여전합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자부심이 넘치는 이들은 우리가 지금 ‘나르시시즘’(자아도취) 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2. 매주마다 들어오는 신간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첫째, 세상에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하고 느끼는 경외감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상상력도 풍부하고, 글솜씨도 빼어난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책을 읽을 때마다 많은 이들의 재능과 실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둘째, 앞서 ‘셀카’현장과 같은 나르시시즘의 풍경을 목격하는 듯한 당혹스러움입니다. 여행기 혹은 여행안내서, 에세이 류엔 특히 이런 책들이 많습니다. 개인 블로그를 그냥 옮겨다놓은 듯이 카페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 낙서장에 끄적거린 듯한 글들이 그대로 책으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누구나 책을 한 권 써야 한다는 생각도 혹시 전국민의 나르시시즘적인 강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퀄리티는 뒷전일 때가 많습니다. 정보라도 풍부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름이 꽤 알려진 사진작가의 ‘포토에세이’도 사진이나 글을 엄선했다고 믿기 어려운 수준인 채로 출간된 적도 있습니다. 편집자의 안목과 역할이 정말 의심스러웠습니다.

#3. 교수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이름 좀 알려진 교수님들께서 신문 등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짧은 칼럼을 가볍게 묶어서 냅니다. 당시엔 공들여 쓴 칼럼이겠지만 지난 이슈라 시의성도 떨어지고, 그닥 깊이있는 내용이 아닌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의 책이든 교수님의 남다른 식견을 담을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공들인 흔적을 보여주시면 감동이었겠지만요.

#4. 최근『기획회의』라는 출판관련 잡지에서 번역가 이종삼씨가 쓴 ‘자아도취의 양면성’에 대해 쓴 글을 읽었습니다. 바버라 오클리라는 외국 저자의 말을 인용, 어느 정도의 자아도취가 성취를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더군요. 충분히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실력인데도 용기가 없는 분에게 약간의 자아도취 처방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 책이 잘 안팔린다고 합니다. 시간적·재정적으로 생활의 여유가 없는 탓이겠지요. 그리고 혹시 편집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해진 때문은 아닐런지요. 저자들의 미숙한 자아도취는 성숙하게 끌어올려주고, 모자란 자아도취엔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엉성한 부분은 꽉 채워주고, 날 것의 재료를 갖고 품격있는 작품으로 가공하는 주인공, 그들이 편집자인데 말입니다. 다들 어렵다고 말하는 지금, 그들의 섬세한 손길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