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베이징 올림픽과 중국의 책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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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 규모가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통계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203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의 23.8%를 차지해 미국(17.3%)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은 과거에도 그랬다. 매디슨 교수에 따르면 1820년 중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전체의 32.9%에 달했다. 중국 경제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커진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이런 거대한 중국이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처신해 나갈 것인가. 청나라 전성기인 1793년 영국의 조지 3세는 조지 매카트니를 중국에 파견했다. 건륭제는 영국을 대등한 국가로 여기지 않았고, 매카트니를 멀리 바다 건너온 조공사절로 취급했다. 21세기 중국이 세계 유일의 경제 대국이 된다면 또다시 세계는 중국에 조공사절을 파견하게 될까. 아마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21세기는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송되는 세계다. 중국이 아무리 거대한 존재가 되더라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인도의 경제 규모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한다면 세계의 다른 경제 대국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올 봄 티베트 문제가 불거졌다. 해외 올림픽 성화 봉송 도중 중국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자 한족이 중심이 된 중국 민족주의자들이 일어섰다. 오성홍기를 든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성화 봉송자를 에워싸고 함께 달렸다. 중국에 항의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 문제로 중국을 비난하자 중국에서는 프랑스계 대형 할인매장인 카르푸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에 대한 비난은 금기시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후 중국 정부의 행동은 어느 정도 평가할 만하다. 세계 각국이 요구한 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측 대표와 협상을 했다. 또 쓰촨(四川) 대지진 때는 국제원조를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은 일본과의 현안이던 동중국해의 가스전 공동 개발에도 합의했다. 이런 중국 측의 협조적인 태도를 일본은 환영한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 주최국으로서도 중국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껄끄러운 지구환경 문제지만 후 주석은 지난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어떤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웃 국가인 일본과 한국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떻게든 중국이 책임을 질 줄 아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해 주변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해주길 바라고 있다. 중국이 세계에서 고립된 상태로는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없다. 18세기와 달리 21세기의 거대 중국은 미국·인도·유럽, 그리고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 밀접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서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중국이 건전한 민족주의를 정착시키고 책임을 다하는 강대국으로서의 출발점을 올림픽에서 보여주길 바란다.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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