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뇌물 긁어모아 충성낚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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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군사정권시절에는 「하사금(下賜金)」이란게 있었다.하사금이란 원래 임금이 신하의 노고를 격려해 내리는 돈이지만 군사정권시절에는 대통령이 고생하는 일선부대나 경찰서를 방문해 주는 격려금을 하사금이라 했다.
「금일봉」「하사금」「위로금」등으로 불린 이 돈은 초기에는 공직사회에 대한 대통령의 격려표시,또는 그늘진 곳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의 사기진작용으로 작용하는 긍정적 요소도 있었다.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돈은 통치자와 공직자의 관계를 공적 관계가아닌 사적(私的)채널,또는 충성을 낚는 도구로 작용했다.마치 마피아조직의 패밀리처럼 보스와 졸개간의 관계를 깊고도 끈끈히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 사례를 우리는 지금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과 두 경호실장간의 위로금 전달방식에서 보고 있다.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全씨는 퇴임후에도 두 전경호실장에게 30억원과 10억원을 건네줬다고 한다.90년 일해 재단 비리사건으로 수감됐다 풀려난 장세동(張世東)씨에게 고생했다는 위로금명목으로 18억원을 주는 등 모두 30억원을 줬다는 것이다.당시 張씨가 교도소에 갔다 올 때면 『휴가 다녀왔습니다』고 깍듯이 全씨에게 신고를 해 그의 의리가 장 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런데 결국 그 의리는 위로금과의 함수관계였던가.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평생 30억원의 돈을 구경하기란 일반시민들에겐 꿈같은 얘기다.그런 꿈이 5공 신군부세력간에는 현실이었다는 이야기다.현직에서 물러나면 최소 몇억원의 전별금이 하사되고,총선.대선같은 큰 일을 치를 때면 어김없이 거대한 하사금이 전달되는 풍토였으니 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자금이필요했던 것이다.
비자금.하사금이 존재하는 정치풍토에선 정치권비리란 언제나 존재한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은 바로 이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공조직을 사조직화하면서 나라의 정치를 보스와 졸개의 정치로 짜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한 우리의 정치선진화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30억원 위로금」에서 거듭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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