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위상 소화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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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장관, 컨트롤 타워 장악하다’ ‘통일부 지고, 외교부 뜨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조직표가 나온 뒤 언론의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와 통일부 장관에게 쏠렸던 힘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옮겨간 것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안보 사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을 맡으면서 명실상부한 컨트롤 타워에 올랐다. 하지만 100일 지난 뒤 모습은 달랐다. 권한은 주어졌으나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정상회담 직전인 4월 18일 한국과 미국이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한 위생조건에 합의한 뒤 국민의 시위가 하루가 달리 번져 나가는 가운데도 외교통상부는 뒤로 빠져 있었다. 검역문제를 다룬 이번 협상은 외교부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외교부에 정책자문을 하고 있는 한 교수는 “통상은 외교부 장관의 지휘 아래 있고, 외교부 장관이 최종적으로 정책 판단을 한 뒤 진두지휘했어야 한다”면서 “다른 부처에 위임하고 손을 놔 버린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 문제가 국내 정치에서 어떤 폭발력을 가진 사안인지 경험 법칙으로 알고 있는 현업 부서로서 소신껏 진언하고 주도권을 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쇠고기 파장이 커진 뒤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 요구에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에 급급했다는 것. 또 다른 자문 교수는 “대통령의 참모로서, 큰 그림의 정무적 판단을 하기보다 너무 관료적이고 법률가적인 입장에서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시스템상의 문제가 더 컸을 수도 있다. 김병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차관급)과의 관계 정립이 문제였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유명환 장관은 대통령과 지근 거리에 있는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방향을 정해 주길 바랐고, 김 수석은 일선의 외교부가 결정해 주길 원했다”고 했다. 교수 출신으로 실무를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촉박했던 김 수석은 ‘제 2의 이종석’은 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고, 지난 정권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외교통상부의 유 장관은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은 채 김 수석이 방향을 정해 주길 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책자문단 교수는 “‘무책임의 체제’가 돼버렸다”며 “당연히 ‘갈팡질팡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한국 외교의 전략적인 공정이 나올 수 없었던 배경이다. 취임 초 성급하게 짜인 4강 정상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외시 7기의 유명환 장관은 실무형으로 미국을 비롯한 4강 외교 현안에 두루 밝을 뿐 아니라 리더십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김하중 통일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권 고위직에 몸담았던 ‘원죄’를 의식해 지나치게 몸조심을 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스템의 정비와 함께 앞으로는 지난 10년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해놓은 공과(功過)를 정확히 새겨 공은 과감하게 우리 외교의 자산으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산적해 있는 민감한 외교 이슈들을 추진하면서 국민과 시선을 맞추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백 교수는 “10년 전으로 한·미관계를 복원하기를 원하는 국민은 없다”면서 “깊이 고민하면서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발전적 정책들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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