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의 도란도란] 코스피 지수를 믿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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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투자자라면 눈여겨보는 숫자가 있다. 종합주가지수, 곧 코스피 지수다. 이 지수가 얼마냐를 보고 주식 투자를 할지, 펀드 환매를 할지 고민한다. 2일 코스피 지수는 1848.27을 기록했다. 그런데 딱 20년 전인 1988년 5월 2일엔 650.03이었다. 지금의 3분의 1 수준이다. 주가지수는 보통 한 나라 경제의 얼굴로 불린다. 국가 경제의 이러저러한 현황을 숫자 하나로 압축해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그렇다면 20년간 우리 경제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경제지표를 보자. 88년 국내총생산(GDP)은 1877억 달러. 2007년(올해 통계치는 없다)은 9570억 달러였다. 5배가 넘는다. 88년 4435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도 지금은 2만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2005년 여름까지 코스피 지수는 20여 년간 500~1000 사이에 갇혀 있었다. 그간 우리 경제는 눈부실 정도로 성장했으나 코스피 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이를 ‘코스피 지수의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30개 종목의 가격을 똑같이 평균해 구한다. 30개 종목 중 하나가 오르면 지수는 정확히 30분의 1만큼 오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코스피 지수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이다. 덩치 큰 놈이 올라야 지수도 오르는 구조다. 덩치 큰 종목이 떨어지면 함께 무너진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제일·조흥·상업은행이 시가총액 순으로 윗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은 구조조정 끝에 매각이나 합병의 길을 가야 했다. 5만원을 웃돌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는 125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즈음 코스피 지수는 300선 밑으로까지 가라앉았다. 이들이 코스피 지수를 다 까먹은 셈이다.

덩치 큰 종목이 그 같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다면 코스피 지수는 어떻게 됐을까. 이 부사장은 92~2003년 시장에서 살아남은 19개 종목으로 이를 계산해봤다. 그랬더니 2003년 지수는 5800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코스피 지수는 그때도 600선 언저리를 헤맸다.

이 때문에 그는 “코스피 지수는 한국 경제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다. 코스피 지수를 믿지 않는 대신 이 부사장은 기업을 믿는다. 성공투자의 지름길은 지수보다는 기업을 보는 눈을 기르는 데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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