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21>15 <기고>단국대이사장 김학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통일정책의 핵심은 역시 「북한 다루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그 방법론이 통일방법에 직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선 논의될 수 있는 방법론은 「북한붕괴유도론」이다.일부 보수우익진영에서 제기돼온 북한붕괴유도론은 두가지 논리구조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당위론이다.북한은 인간지옥이나 다름없는 정치범 수용소로 상징되는 감옥국가체제이므로 이러한 비인도적 체제는 하루빨리무너지는 것이 천리에 맞는다는 뜻이다.
둘째는 개연론이다.김일성(金日成)의 후계체제인 김정일(金正日)세습체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므로 그 허점을 부추겨 김정일 체제의 지속성을 차단하고 붕괴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그렇게 하면 북한에서 공산체제가 붕괴될 개연성 이 높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북한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때로는 봉쇄하는 것이다.식량난 같은 것도 외면해야 한다.식량난이 더욱 길어져 민중반란이 일어나도록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군사적으로 제재할 명분이 충분한 경우에는 용기를 갖 고 그렇게 해야 한다.북한붕괴유도론에 맞서있는 것이 「북한순치론」이다.쉽게 말해 북한을 자본주의 쪽으로,자유민주주의 쪽으로 길들이자는뜻이다. 북한순치론은 우선 북한붕괴유도론의 당위론 부분에선 수긍하면서도 개연론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를 주저한다.
북한이 안팎으로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정일 체제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설령 북한에서 마침내 식량난동으로 대규모 민중반란이 일어나 이른바 내부폭발을 경험한다고 하자.이때 과연 어떤 일들이 북한에서 펼쳐질까.그리고 그 일들은 남한에,한반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까.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북 한에서 공산체제가 순조롭게 무너지는 것이다.그리고 나서 집권하는 세력과 정부가 대한민국과의 평화적 통일을,그것도 자유민주주의 깃발아래받아들인다면 문제는 통제범위 안으로 한정된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된다면 다행스러울 것이며,「붕괴유도론」이나「순치론」이 모두 뜻을 잃을 것이다.그러나 정반대의 시나리오도그려볼 수 있다고 순치론자들은 주장한다.북한 통치 엘리트들의 교조주의적 성향으로 미뤄,또 남북 사이의 쌓이 고 쌓인 증오감과 적대감으로 미뤄,게다가 북한이 1백만명 이상의 병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성능의 현대적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설령 내부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서 민중봉기 세력앞에 순순히굴복하겠느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자.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엄청난 참극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한국에 대한 무력도발을 시험해 보려는 유혹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에서 체제붕괴와 국가소멸이 있는 경우 북한은,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 전체가 옛 유고슬라비아처럼 발칸화할 개연성이 있다는 몇몇 학자들의 경고는 경청할 만하다.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때 역시 북한붕괴유도론보다는북한순치론이 훨씬 더 슬기로운 입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 다루기」는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으로 귀착된다.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신뢰를 회복하는 가운데 차차 제도적.정치적 통합으로 발전해가자는 뜻이다.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무작정 기능주의적 접근법에만 매달릴 수는 없을 것 이다.
지난 90년에 이미 시작된 군비통제 논의를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에 맞게 확대시키는 것도 고려할 때가 됐다.북한의 정치.군사 해결론을 현실에 맞게 수용하면서 기능주의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새로운 사고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단국대이사 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