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패한 외국인 공직자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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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국인 공직자 채용 실험이 6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금융감독원 특별고문(부원장급)으로 영입된 윌리엄 라이백이 한국을 떠난다. 그는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이 없다”고 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위원회로 통합되면서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국장과 홍콩 통화감독청 수석부청장을 지낸 라이백은 세계 금융감독계의 중진이다. 국내 금융감독 업무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민주당 의원의 적극적 추천으로 스카우트한 인물이다.

그의 퇴진을 놓고 금융위는 무리하게 ‘높은 연봉-비효율’과 연관시키려는 인상이다. 2억2500만원의 연봉에 아파트 임대료와 통역 비용을 합쳐 연간 5억원이나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선진국에 비교하면 그의 연봉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관료 사회의 습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영어가 되는 금감원 간부들이 거의 없어 통역을 끼우자니 서로 불편하고, 그래서 라이백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는 익명의 금융위 관계자 해명이 설득력이 있다.

라이백의 퇴진에는 관료 사회의 ‘끼리끼리 문화’도 깔려 있는 느낌이다. 금융위 주변에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민주당 의원의 천거로 영입된 라이백을 누구도 챙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위로 조직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자기 자리를 챙기는 데 골몰하느라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금융 공기업 간부에 외국인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겠다고 보고한 부서가 금융위원회다. 금융위는 금융감독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감독 인력의 25% 이상을 외부 전문인력으로 충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에서 보듯 금융감독의 중요성은 막중하다. 기껏 초빙한 외국 전문가에게 노하우는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조직 논리를 내세워 반년도 안 돼 내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고도 아시아 금융 허브를 꿈꾼다면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