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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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5일 타계한 화정(化汀) 김병관(金炳琯)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은 평생을 동아일보와 함께하면서 ‘민족주의·민주주의·문화주의’라는 동아일보의 창간 이념을 경영철학으로 지켜 왔다. 1989년 사장을 맡은 뒤 동아일보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명예회장은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 선생의 장손이자 일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고려대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68년 34세의 나이에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87년 발행인, 89년 사장을 거쳐 93년 회장을 맡았다. 2001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신문 경영과 함께 언론인으로서도 업적을 이뤘다. 95년 한국 언론으론 처음 중국 리펑 총리와 단독 회견을 했고 98년에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공식 초청을 받아 남측 신문인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90년에는 한국 신문협회 회장, 국제신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를 맡았고, 96년 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 이사로 일하며 국제 언론 교류에 앞장섰다.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알리는 많은 행사도 기획했다. 중국 인민일보, 러시아 이즈베스티야,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제휴 관계를 맺는 등 신문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교육 분야에도 족적을 남겼다. 99년 고려대와 중앙중고교·고려중고교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2005년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전후해 지하 중앙광장, 100주년 기념관, 화정체육관 등을 차례로 완공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완창 판소리 발표회’ 등을 주최하고 창극 ‘아리랑’의 소련 9개 지역 순회 공연을 지원해 국악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일민문화재단 이사장(98), 한국디지털 교육 재단 이사장(2005)도 지냈다.

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도 적극 기여한 고인은 언론·문화·교육 발전에 미친 공로로 9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97년 호주 모나쉬대에서 명예 법학 박사, 2001년 일본 와세다대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90년대 들어 ‘제2의 창간’을 선언하고 서울 충정로에 대형 사옥, 광화문에 동아미디어센터를 건립하면서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의 발전을 위한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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