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역사로서의 세계화

과거에 매달리는 옹졸함은 쓸모가 없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연결하는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는 것은 성숙한 국민이라야 가능하다.그래서 우리는 세계화의 문제를 어제의 개국(開國)과 오늘의산업화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필요를 느낀다.
동아시아 3국중 개국압력을 자율적으로 극복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경우는 일본(日本)이다.개화정책에 실패하고 유럽제국과 일본에 의해 이른바「次식민지」가 되었던 중국(中國)은 사회주의로 통일은 되었으나 지금은 사회주의체제 자체의 대변화 를 감수하지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韓國)은 군사력을 통한 일본의 개국압력에 유효하게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고 역사상 지울 수 없는 식민지 지배를 받음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치욕과 패배와 체념의 서러움을 안겨 주었다.해방 후에도 한국은 식민지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거기다 민족상잔(相殘)의 비참한 전쟁까지 치렀다.전세계가 냉전을 청산하고 있는 이 마당에도 냉전의 마지막 고아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의 한국현대사를 보면 우리 민족의 무서운 잠재력에 우리들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외부세력에 의해 강제된 분단(分斷)속에서 전쟁과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피땀 흘려 일한 결과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물론 우리 사회안에,그리고 한국인의 내면에 좋지 못한 제도나 의식이 많고 최근 일련의 대형사건에서 보듯 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이제「추악한 한국인」을 스스로 얘기할 만큼 컸다고 말할 수도 있다.지난 50년간 우리는 역사에 반드시 기록해야 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전체적으로 보아 근대화,특히산업화에 성공했 다고 자평할 수 있다.실패한 개국을 근대화의 성공으로 보상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화를 국정목표로 삼고 있다.세계화는 역사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는 정치체제라면 국내의 통합능력으로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곰곰 생각해 보면 개국의 실패도,근대화의성공도 그 원인은 모두 우리 내부에 있었다.뭐니 뭐니 해도 대국(大局)을 파악할 수 있는 지도층의 확고한 정책방향이 열쇠다.대체로 한 인간의 성숙과정은 자기→자기탈출→자기내(內)귀환으로 이어진다.자기탈출 없는 자기는 우물안 개구리며,자기탈출을 매개로 한 자기귀환을 통해서만 성숙 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국가도 마찬가지다.바깥세계로부터의 도전 속에서 오히려 적응력과 통합의 예지를 배우게 된다.
이제 우리가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세계속의 한국을 키워나가려면개국 이전의「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근대화의 목표였던「부국강병(富國强兵)」의 모델만으로는 곤란하다.
우리가 세계의 대세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인류보편적 가치에 공헌하고 그러기 위한 국내체제의 부단한 개혁을 해 나갈 때 나라도 성숙해질 것이다.일류국가나 선진국이란 말을 우리 스스로 외치는 것보다는 성숙한 인간을 구성원으로 하는 성 숙한 정치사회로서의 한국이 만들어지면 남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볼 것이다.
세계화는 그 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쟁력을 통한 나라의 선진화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이를테면 안으로 부동산 실명제와 같은 제도개혁을 단행하고 밖으로 고문방지국제협약에 가입하는 것은 세계화에 걸맞은 적응행위로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이 기회에 정부를 향하여 한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은 문화와 환경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다.한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을찾는다고 하는데 그 한국적인 것의 총체가 바로 한국문화다.문화는 그 속성상 민족주의와의 친근성을 갖고 있는데 세계화.정보화시대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문화국제주의」로 나가야 한다.그리고문화와 함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것은 환경이다.문화와 환경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국민이라야 존경받는다.
***文化.환경에 투자필요 세계화가 정부의 구호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의무만 강요해서는 안되며 세계화의 과정과 결과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그런 점에서도 문화와 환경은 반도체 못지 않은 세계화의「상품」이 다.
◇필자약력▲53세▲서울大정치학과졸▲日 東京大대학원 정치학박사▲고려대 정외과교수▲남북대화자문위원▲한국평화연구원장▲저서『美군정과 한국민족주의』등